『1945년 하이난(海南)도에 고립된 일본군이 조선인 1,000여명을 동원, 싼야(三亞)시 인근 산에 굴을 파고 무기와 군수물자를 숨겼다. 이후 옆에 또다른 굴을 파게 하고 칼로 무자비하게 살해해 파묻었다. 이곳을 천인갱(天人坑)이라 부른다』중국 하이난성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발간 「일본군 하이난성 침공 기록」이다.
중국 최고의 휴양지 하이난성 싼야시 조선촌에는 이 곳으로 끌려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숨진 동포들의 외로운 넋이 머물고 있다. 그들을 달래주는 것은 지난해 10월 현지에 농업투자를 한 한국인 서재홍(徐在弘·61)씨가 사재를 털어 세운 추모비 하나뿐이다.
이 곳에는 당시 조선사람들을 기억하는 주민이 여럿 생존해 있다. 1942년 일본군에 동원돼 함께 일했다는 푸야칸(符亞乾·83)씨는 『푸른 색에 흰 단추가 달린 옷을 입은 18-30세 사이의 조선청년들은 조선보국대로 불렸다』며 『일본군이 풀뿌리 끓인 죽만 먹이고 일을 시켜 반년정도 지나면 대부분이 죽었다』고 회상했다. 조우야요우(周亞優·82·여)씨는 『매질과 굶주림을 가까스로 이겨낸 조선사람도 일본군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1941년부터 끌려와 광석채굴이나 도로건설에 동원된 조선사람들은 대부분이 재소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재홍씨는 『일본 법무성 월간지 「치형(治刑)」 1943년 11월호에는 경성형무소에서 행한 제2차 남방보국대 파견 검열식 기사가, 같은해 12월호와 44년 9월호에는 하이난성 싼야에서 일하는 조선보국대 관련 기사가 기록돼 있다』고 밝히고, 『천인갱 일대를 기념공원이나 유적지로 만들어 외로운 넋을 달랠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싼야시 위원회 차이웬후이(蔡文惠)과장은 『이 일대 400여평에 농경을 금지했고 중앙정부에 부지제공 등 승인을 요청했다』며 『유족들에겐 추모의 장이, 한국 관광객들에겐 지나간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교훈의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싼야=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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