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한미통상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자신있게 예측하긴 힘들다. 다만 한미통상관계는 미국의 정치구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으므로 앞으로 전개될 미국 정치의 중요 일정과 그 영향력을 고찰하면 한국이 올해 양국 관계를 어떻게 예측하고 대비해야 할 지도 알 수 있다.현 시점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역시 미 대선이다. 올해 미 대선에선 몇가지 이유로 통상문제가 상당히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먼저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99년 1∼9월의 무역적자는 2,510억달러로 98년 한해동안의 적자 총액을 초과했다. 두번째로는 선거에 비판적인 펜실베이니아·미시간·일리노이주에 몰려 있는 철강 자동차 제약 등의 산업계가 더욱 강력한 수출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담으로 미국에서 일어난 국제무역 관련 논쟁이 있다. 노동·환경단체가 WTO 각료회담 기간중 펼친 시위는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최대의 시민불복종운동으로, 회담을 무산시킴으로써 조직화한 노동계의 입지를 강화해 주었다.
현재 미 대선 선두그룹 후보중에는 패트릭 뷰캐넌만이 자유무역에 반하는 「경제적 국수주의」를 내세우고 있을 뿐 조지 부시와 앨 고어, 존 맥케인, 빌 브래들리 등 네 후보는 WTO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미 경제와 소비자의 이해(利害)에 중요한 자유무역을 미 정부가 더욱 촉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공화당 선두주자인 조지 부시는 국제적인 무역기구, 특히 북미자유무역기구(NAFTA)와 WTO에 대해 「강력한 지지」입장을 거듭 피력하고 있다. 민주당의 선두인 앨 고어 역시 무역장벽을 비판하며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노동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공고히 해온 고어는 그같은 입장을 바꾸라는 노동단체들의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한국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역 관련 논란에서 주 관심대상이 아니다. 현재까지는 주로 중국이나 WTO, 무역적자 혹은 뷰캐넌의 「경제적 국수주의」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역적자와 노동계 보호 논의는 즉각 특정국가를 향한 비판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인 한국이 주요 산업계와 노동계의 지지를 구하려는 후보자의 관심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도 미 노동계의 관심사인 철강수입이나 미국산 농산물과 의약품의 시장개방과 관련, 미 정부당국의 소명요구 압력에 처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이 다시 경제강국으로 부상했다는 시각이 미국에서 자리잡기 시작해 그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말 각 산업계는 2000년 미국의 통상교섭의제와 관련한 「연례국가무역예측(NTE)」보고서에 실릴 내용을 통상위원회에 제출했는데, 내년 1·4분기말에 발간되는 NTE보고서에 한국은 두드러지게 언급될 게 뻔하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과 우호적 교역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올 1년동안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먼저 파문이 일지 않도록 대미 수출품, 특히 철강같은 산업을 감시해야 한다. 또 NTE보고서의 논평을 살펴 보고 당장 문제영역을 확인한 뒤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미 산업계는 끊임없이 한미관계에 긴장요인을 제기하고 NTE보고서 의제는 이를 토대로 확정되기에 논쟁이 일기 앞서 보고서에 담길 긴장 요인들을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선전이 격화할수록 정치인들은 노동계와 산업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올해는 한미관계에 시련기가 될 수도 있지만 한국은 미국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상호 교역관계를 증진하는 호기로 활용해야 한다.
김석한·재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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