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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파이팅, 코리아 -송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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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파이팅, 코리아 -송호근

입력
2000.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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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이 밝았다. 새 천년 맞이 광화문 축제는 지난 세기 한민족이 겪었던 모든 시련과 실패와 서러움을 털어내고 밝은 미래를 기약하자는 씻김굿판이었다. 광화문에 운집했던 10만 인파의 머리 위에, 새 날을 기다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던 전국민의 엄숙한 마음 속에 울려 퍼졌던 제야의 종소리는 여느 때의 그것이 아니었다.한번도 마음 퍼질러 발뻗고 살아보지 못했던 20세기 100년의 회한을 역사의 긴 여운에 담아 북악에서 백두로, 한강에서 두만강으로 온 천지에 은가루처럼 흩뿌려줄 것만 같은 장엄한 승천(昇天)의 소리였다.

식민지 상처와 생존의 몸부림으로 얼룩진 20세기 한민족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제야의 종소리에 누가 옷깃을 새로 여미지 않았을 것인가. 장엄하게 떠오르는 신새벽의 태양에 누가 만세를 부르지 않았을 것인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살피느라 지난 100년 동안 한번도 후련하게 외쳐보지 못했던 민족의 절규를, 번영의 합창을. 새 천년 새벽에 마음 가다듬고, 20세기보다도 더 험난한 여정을 헤쳐나갈 한반도와 7,000만 동포에게 격려의 인사를 건넨다. 『파이팅, 코리아』

100년 전, 국운이 쇠잔해가던 조선의 최대의 화두가 개화(開化)였다면 이제 우리에게 그것은 세계화(世界化)이다. 비록 100년 정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두 개의 화두가 우리에게 지시하는 과제는 그다지 다르지 않다.

20세기의 선진 열강은 자본의 해외진출과 시장개척을 통하여 성장했다. 적어도 이웃나라의 영토와 문물을 탐하지는 않았던 조선에게 개화는 열강들의 탐욕에 희생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방어전략이었다. 그러나 개화를 향한 정치적, 경제적 개혁시도는 번번이 좌초했다. 그 대가는 실로 혹독한 것이었다. 일제의 침탈, 이데올로기전쟁, 군부독재와 억압정치.

그런데 우리가 실패의 대가를 부지런히 치르고 있던 끝물에 세계 강대국들은 벌써 21세기를 주도할 새로운 대변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보혁명, 금융자본, 시장논리로 무장한 세계화가 그것이다. 지난 세기의 개화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향하는 강성논리라면 세계화는 지식국가와 창의적 문화를 강조하는 연성논리이다. 경쟁력과 힘의 원천이 산업자본과 군대에서 금융자본과 지식, 문화로 이전한 것이다. 그런데 정보혁명과 지식이 뿜어내는 힘의 본질을 터득해야 할 시점에서 우리는 문호만 개방하면 개화의 모든 조건이 완결된다는 설익은 개화론자들의 실수를 뼈아프게 허용했다. 그 대가로 IMF사태를 치렀다.

일제의 식민경험이 독립국가의 존엄성과 민족 주체성의 고귀함을 일깨워 준 것처럼, IMF사태는 우리가 자칫 안주할 뻔했던 구태의연한 제도와 관습의 단단한 껍질을 단번에 부수었다. IMF사태는 엄청난 고통이기도 하였지만 새 천년의 높은 파고를 헤쳐나가는 데에 무엇이 필요한 지를 온 몸으로 체득했던 계기였다.

탈각(脫殼)의 충격으로 그만하면 견딜만 했다. 물론 완전한 탈각은 아니더라도 「디지털경제」가 요구하는 정보마인드를 단기간에 배양하고 「네트사회」를 구축할 인식의 지평을 활짝 연 것은 고통의 또 다른 대가일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야말로 21세기 인터넷혁명을 선도할 가장 적합한 심성을 갖추고 있다는 지적이 과장된 것이 아닐진대, 100년 전 실패한 개화를 만회할 새로운 시대가 다가왔음을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더 많은 고통을 치르고 더 많은 실수를 반복하기에는 지난 세기의 경험이 너무 쓰라렸다. 새 천년 맞이 광화문 축제는 「은둔의 나라」에서 「각성의 나라」로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전야제였으며, 신새벽의 태양은 한민족의 고난이 이제서야 비로소 끝날 수 있다는 희망의 징표였다. 각성은 오랜 동면 뒤에 오고, 진정한 희망은 고난 뒤에 오는 것. 21세기의 첫 걸음을 떼면서 7,000만의 힘을 모아 외치고 싶은 절규는 「파이팅, 코리아」.

송호근·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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