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제임스 버크 지음, 장석봉 옮김
지호 발행, 1만 9,000원
참으로 새로운 과학의 발견이란 세상을 지배하는 통념을 깨뜨리면서 세상에 나온다. 과학은, 그 첫 발은 창의롭고 신선한 한 가닥 지식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사회로부터 「진리」로 공인받는 때부터 단단한 세계관의 그물이 된다. 과학사의 맨 윗 자리에 기록된 과학자들은 이런 그물망을 이(齒)로 끊는 아픔을 겪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거부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유클리드 기하학과 다른 체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몇몇 수학자들, 신의 섭리를 뒤엎은 다윈 같은 진화론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지식의 위대한 성장은 또 너무나 우연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발달은 18세기 몇 해 동안 영국의 무더운 여름 날씨와 상관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 『마치 꿈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원자가 모여 분자를 만든다는 구조를 밝힌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불꽃을 응시하다가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뱀 같은 모양의 원자 고리를 보았다. 쿠텐베르크 역시 인쇄기의 착상이 『마치 광선이 오는 것』처럼 떠올랐다고 묘사한 적이 있다.
과학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널리 알려진 영국인 리처드 버크의 책 「우주가 바뀌던 날 그들은 무엇을 했나」(원제 The Day The Universe Changed)는 현대인의 생활을 지배하는 사고방식이 어떤 과학의 발견, 어떤 세계관의 변화에 따라 만들어졌는가를 보여준다. 지난 1,000년 동안 지식과 과학이 어떤 계기를 통해 발전했는지, 그 변화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과학자들은 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암흑의 시대 중세인들의 눈과 귀를 연 것은 11세기 십자군이 수백 년 동안 잊혀진 그리스 고전의 아랍어 판본을 발견하면서부터다. 15세기 인쇄술이 등장하면서 구술문화에 의존하던 사회는 기초부터 흔들렸고, 인간은 기억을 기록과 맞바꾸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기 야전 병원에서 사용한 의료 통계학은 현대 서양의학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공룡화석을 발견하면서 진화론이 만개했다. 비록 나치즘으로 이어지는 불행을 낳긴 했지만.
버크는 이러한 발견과 발전들이 자리를 잡기까지 무척이나 어려운 과정들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견고한 우주관을 깨뜨려야 하고 정치사회적인 제약을 극복해야만 했다. 프랑스 혁명 후 수학과 물리학은 혁명 전의 계몽주의 엘리트 이데올로기와 너무 밀접하다며 금지되었다. 표백제나 화약, 기술의 전반적인 과정을 다루는 화학은 대중의 삶과 밀접하다고 여겨 장려되었으며 재정지원도 받았다. 과학의 발전은 사회의 구조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조는 가치를 결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도덕과 윤리와 생의 한계와 목적을 결정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과학의 진리도 『현대구조가 정의한다』는 답밖에는 구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버크는 그것 때문에 지식의 발전이 심각한 제약만 받는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구조는 미지의 사실을 확률에 의해 정의된 영역에 둠으로써 탐구를 더 용이하게 한다』 과학은 어느 때, 어떤 경우에도, 또 어느 장소에서도 이러한 지침에서 출발해 진보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1,000년 과학의 발견에서 무얼 얻는가? 버크는 『어느 날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의 확실성을 다시금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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