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제2회 춘란배 세계 대회 16강전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유창혁 9단과 중국의 신예 펑첸 3단의 대국에서 유창혁이 최종 끝내기 단계에서 자신의 반집승을 확인하고 마지막 반패를 상대에게 양보했는데 정작 계가를 해보니 거꾸로 유창혁이 한집반을 진 것.
이쯤되면 대부분의 바둑팬들은 소문난 낙관파인 유창혁이 또 계가를 착각해서 실수를 저질렀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문제는 실제로 유창혁의 계가가 정확했다는 것.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같은 「괴변」이 발생한 것일까. 원인은 바로 대국룰 때문이었다. 춘란배는 중국이 주최하는 국제기전이기 때문에 중국룰을 적용한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즉 한국룰로 계가를 한다면 분명히 유창혁의 반집승이지만 중국룰을 적용하니 공배에 놓인 돌까지 집으로 계산하게 되어서 무려 두집이나 차이가 발생, 승패가 뒤바뀐 것이다.
유창혁은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이른바 바둑 3강이 서로 다른 바둑룰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웬만한 바둑팬이면 다 알고 있는 사실.
이 가운데 한국룰과 일본룰은 약간의 뉘앙스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동일하지만 중국룰이나 대만의 바둑광 잉창치씨가 개발한 잉씨룰은 계가방법이나 공배 및 빅의 처리 등 적지 않은 부분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반집승부를 다투는 미세한 형세라면 반면에 빅이 생겼다거나 귀곡사를 비롯한 특수한 사활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혹은 마지막 공배를 누가 메웠는가 등에 따라 한두집이상 차이가 발생, 이번처럼 승패가 뒤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바둑계에서는 이번 일을 선수 개인의 착각이나 중국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가볍게 처리하고 있지만 사실 이대로 우물우물 넘어갈 일이 아니다.
바둑룰이란 대국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이를 잘 모르고 대국을 한다는 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시합 규칙도 모르고 경기에 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국기사들의 대다수가 평생 한번도 중국룰을 적용한 대국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중국룰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점차 중국바둑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국제기전에서 중국룰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날 것은 필연적이므로 이제부터라도 범 바둑계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바야흐로 바둑이 세계적인 두뇌 스포츠로 발돋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국제적으로 통일된 바둑룰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바둑이 장차 올림픽 종목으로 편입될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차제에 한중일 3국이 머리를 맞대고 세계 공통 바둑룰 제정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가 되었다.
/바둑평론가=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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