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10∼20대들은 해돋이 여행에서 안돌아 왔는지 「아버지 세대들」만 북적대는 대중목욕탕에서 새해맞이 몸씻기를 했다. 올챙이 배에 살빠진 허벅지를 가진 50대 아버지는 한증막 기운에 어지러운지 크로마뇽인처럼 구부정하게 냉탕으로 들어가고, 목침을 베고 누운 40대 아버지는 지긋이 눈을 감고 망년회로 겹겹이 쌓인 피로를 달랜다.목욕비 3,000원 본전 생각 때문일까. 새해 첫 목욕이라서일까. 우리 아버지들은 목욕조차도 열심히 한다. 넓적한 등판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정성스레 때를 밀고 수염을 다 깎은 면도기로는 발뒤꿈치의 굳은 살마저 깎는다. 386세대는 배우다 말았던 「국민 체조」를 하며 눈을 부라리는 40대도 있고, 폭포 냉탕에서 내려오는 세찬 물줄기를 맞으며 비장하니 눈을 감고 있는 50대도 있다. 가만히 있어도 뜨겁디 뜨거운 한증막 안에서 팔굽혀펴기에 쪼그려뛰기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의 아버지들이다.
휴식을 취하고, 피곤을 푸는 것조차 「전투적으로」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에는 20세기를 헤쳐온 원동력이 있다. 일제와 한국전쟁, 산업화와 IMF를 관통하며 질기게 이 사회를 받쳐온 것은 그 구부정한 어깨들이며 어깨너머로 퐁당거리는 아들의 재롱을 보는 그들의 눈빛이다.
『어허, 여기서는 수영하면 안돼요』라며 주의를 주지만,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에는 이미 발톱이 빠져있고, 아이들은 물장난을 멈추지 않는다. 쉼없이 뛰놀며 자라는 이 아이들도 DDR과 스타크래프트와 테크노 음악을 지나 어른이 되고 격랑의 세월을 헤쳐가는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들의 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올해만큼은 나를 키워주신 많은 아버지들께 새해 인사를 드려야겠다. 새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인터넷 세상을 일구는 첨병이 되겠다고 뛰어들었기에 새 일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그 분들께 꼭 인사를 드리고 싶은 이유가 있다. 그 분들의 애정과 신뢰를 먹고 내 꿈과 희망은 자라왔으며, 그 분들의 건강한 생활을 보며 삶의 동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이 새해에도 건강하게 사시기를 빌며, 상쾌하게 목욕탕을 나섰다.
방민수·코오롱유화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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