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핸디 약력-1932년 아일랜드 킬데어 출생-영 옥스포드대와 미 MIT대학원 졸업-석유회사 셸의간부를 거쳐 런던대 경영대학원 교수-BBC방송의 경제프로그램을 진행한 방송인. 현대의 경제현상과 인간성 상실들의 문제를 쉽고도 깊이있게 전달하는 경제평론가로 유명.-94년 '올해의 경제평론상'을 수상한 텅빈 비옷(Empty Raincoat)을 비롯해 그의 저서는 발표될때 마다 큰 반항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대역에 올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헝그리정신(Hungry Spirit)'현대의 연금술사((The New Alchemists)등이 번역 소개.
찰스 핸디(67)는 요즘도 왕성한 저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영국의 원로 경제평론가 겸 사회철학자다. 그는 자본주의의 핵심원리인 시장과 생산성의 문제를 고찰해 인간성의 이해에 기초한 독창적인 이론을 제안해 왔다.
고전과 역사, 철학등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날카롭게 성찰해 온 그를 런던 시내 푸트니 힐의 자택에서 만나 새 밀레니엄의 전망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인류 역사상 20세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엄청난 진폭의 변화를 겪은 시대였다. 경제철학자로서 지난 한 세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난 세기는 엄청난 격동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인류는 여러차례의 전쟁을 경험했고 숱한 재앙도 겪었다. 기술의 진보로 말미암은 대량살상의 위험은 핵무기라는 형태로 아직도 남아있다.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급속히 변화시킨 측면도 있다. 여성은 가사노동에서 해방돼 자신의 자아를 실현할 기회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라디오와 텔레비젼의 발명으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됐다. 특히 인터넷의 보편화는 지구촌을 한 가족단위로 묶어 인류통합을 위한 특별한 가능성을 열었다. 지난 세기 세상은 살기 편해졌지만 환경문제는 심각해졌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물려줄 자연자원을 지금도 파괴하고 있다. 또 20세기는 한 국가 안에서의 빈부격차 뿐 아니라 나라간 빈부문제의 심각함이 부각된 세기이기도 했다
-지난 세기 동안 수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고, 성과를 거둔 나라들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독재하의 신음이 들리는가 하면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나라들도 빈부격차 인권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민주주의의 과제와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새 세기 민주주의엔 인간의 목소리가 더 많이 가미돼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민주주의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가 돼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경제학자들의 얘기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을 위해 고안된 철학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없이 민주주의가 구호나 이론적 도그마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새 세기에도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3국들의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또 시장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민주주의는 필요한 메커니즘이다. 민주주의의 대의를 실현하는데는 탁월한 정치적 리더십도 필요하지만 보다 많은 개인의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동서간의 이념적 대립이 사라졌다. 그러나 세계를 주도할 이념이 정립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북 국가들 간의 경제적 대립이 더욱 심화하는 등 새로운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새로운 세기의 이념적 전망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붕괴는 이념적으로는 공산주의의 종말을,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의 번성을 가져왔다. 과거 공산권 국가들은 보호무역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장에서 서방선진국들과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문에 국가간 부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선진국들이 시장을 독점하는 폐해도 예상된다. 지난 해 미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협상에서 나타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후진국의 입장 및 시각차는 새 세기에도 갈등의 요인으로 잠재할 것이다. 서구 거대자본의 독점과 글로벌 스탠더드의 무차별 강요는 개발도상국과 동구권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민주주의에 기초한 시장경제적 질서가 새로운 세기의 이념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20세기는 국가 우선과 개인의 개성 존중이 혼재된 사회였다.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개인들의 국가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해진 게 현실이다. 새 밀레니엄 시대에 국가의 역할은 어떻게 정립될 것으로 보는가.
『앞으로 국가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물론 세금을 거두고 도로 와 항만을 건설하는 등 사회간접자본 및 공공투자를 담당하는 전통적인 국가의 기능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통제하는 지난 시대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과거 국가의 권한과 기능은 지방정부나 자치단체로 상당부분 이양되고 국가는 지구화로 좁아진 이웃나라와의 문화·경제공동체 형성에 주력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유럽은 이미 지방자치의 활성화로 전통적인 국가의 역할을 줄여가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세기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나라마다 발전단계에 따라 형태는 다르겠지만 유망기업을 선정해 기술을 지원하고 경쟁력있는 산업발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새로운 역할일 것이다
-냉전후 유럽을 중심으로 사회주의 세력들은 새로운 대안으로 신자유주의와 제3의길을 주창하고 있다. 그러나 제3의 길을 내세운 영국과 독일도 분배 문제 등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있는가.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나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이론임이 증명됐지만 아직까지 진보에 대한 우리의 욕구를 완전히 채워주지는 못했다. 자본주의는 보다 나은 복리를 위해 변화해야만 한다. 자본주의는 핵심원리인 창조적 파괴 개념때문에 성장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신자유주의는 대립하고 있던 공산주의의 붕괴로 힘을 얻고 있지만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이윤극대화의 추구로 오히려 초기 자본주의의 이기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또 기업에 대한 일체의 사회적 통제를 거부해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에 빠질 위험성도 있다. 제3의 길은 학문적 이론이라기 보다 국가를 경영하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의 측면이 강하다.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데는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든다. 효율성을 강조하다 보면 인간이 실종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점은 자본주의나 민주주주의에 모두 인간이 배제되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얼굴을 지닌 자본주의」가 대안이 돼야만 한다
-최근들어 각국이 자유무역을 내세우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시장 규제를 강화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과 정부의 역할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시장은 어느 곳이 부족하고 어디가 남아도는 지를 파악, 자동적으로 경보음을 울리는 경이로운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수요 공급의 원리에 따라 경제질서를 잡아준다. 그러나 시장은 메카니즘일 뿐 철학은 아니다. 시장은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상품이나, 받는 돈보다 서비스하는 데 비용이 더 드는 고객에게는 관심이 없다. 시장원리에서는 학교나 병원, 복지시설은 비생산적이어서 도태돼야 할 기관일 따름이다. 여기서 정부가 맡아야 할 몫이 분명해진다. 코끼리와 벼룩으로 예를 들자면 시장은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를 강조해 코끼리를 양산할 뿐이지만 정부는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벼룩들을 높이 뛰어 오르게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유럽은 유럽연합(EU), 미주대륙은 북미자유무역연합(NAFTA), 동남아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등 지역별 경제 공동체 구성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동북아지역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상이 싹트고 있는데, 이런 움직임을 어떻게 보는가.
『지난 해 유럽 11개국을 한 단위로 묶는 유로화가 출범, 미국의 달러화와 함께 양대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유럽연합을 모델로 한 지역별 경제통합체의 결성이 잇따르면 달러와 유로외에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등 지역단위의 단일통화가 출현하게 될 것이다. 환율에 대한 예측이 불안하면 무역자유화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에 블럭화한 경제공동체는 단일통화권의 흐름속에서 환율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동북아 경제공동체 구상은 시대적 흐름과 일치하고 있다.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적 잠재력이 큰 만큼 이 구상이 본격화하면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등 동남아 경제공동체와의 연계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21세기에 주목되는 신기술 분야중 하나가 바로 생명공학이다. 그러나 인간복제는 인권과 윤리 문제라는 논란을 낳고 있다. 인간복제 기술 개발을 어느 선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보는가.
『생명공학은 인류 기술 발전의 가장 혁신적이고 흥미있는 분야의 하나다. 인간복제문제는 분명 새로운 세기의 과학적·윤리적 화두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선천적 유전자 결함으로 평생을 괴로움속에서 지내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인간복제라면 제한적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각한 불구로 태어나게 될 신생아를 위한 분만전 치료도 장려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수한 인종 창출을 위한 복제등 자연에 역행해 인간이 선악을 창조해 내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적·도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당신의 저술은 자본주의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요즈음의 관심사와 다음 저술 구상은.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감동을 주는 창조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찾아내려 하고 있다. 평범함속에서 비범함을 발견하거나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사람들을 통해 자기일에 대한 헌신적 자세와 역경에 굴하지 않는 끈기와 창의력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음에 쓰려고 하는 책은 요리책이다. 요리의 재료와 동서양의 철학을 접목시켜 생각하며 먹는 요리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한다
찰스 핸디 약력
·1932년 아일랜드 킬데어 출생
·영 옥스포드대와 미 MIT 대학원 졸업
·석유회사 셸의 간부를 거쳐 런던대 경영대학원 교수. 학술원회원.
·BBC방송의 경제프로그램을 진행한 방송인. 현대의 경제현상과 인간성 상실등의 문제를 쉽고도 깊이있게 전달하는 경제평론가로 유명.
·94년 「올해의 경제평론상」을 수상한 「텅빈 비옷(Empty Raincoat)」을 비롯해 그의 저서는 발표될 때마다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베스트셀러대열에 올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헝그리 정신(Hungry Spirit)」 「현대의 연금술사(The New Alchemists)」등이 번역 소개.
』
/런던=이창민특파원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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