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신년을 맞아 「뉴밀레니엄 독자토론회」를 편집국 회의실에서 가졌다. 「독자의 소리」 단골투고자 가운데 연령 직업 성별을 고려하여 선정된 대표독자 5명은 「한국사회와 신문독자의 역할」을 주제로 개최된 이 토론회에서 『독자 하나하나가 사회의 감시자가 될 때 한국사회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독자들의 참여로 한국일보와 한국언론이 더욱 발전하길 기원했다. 편집자주▲토론회 참가자
심영우(沈永瑀·67·전직 공무원·서울 성북구 삼선동)
강신영(姜信榮·47·㈜대운스포츠 대표이사·서울 서초구 서초동)
박동현(朴東鉉·43·㈜대교 교육정보연구소 대리·서울 구로구 구로5동)
고순자(高順子·40·문방구 주인·경기 가평군 외서면)
홍승한(洪勝韓·24·건국대 화공학과 4·서울 중랑구 면목8동)
_어떤 계기로 독자투고를 시작하셨나요.
심영우= 저는 한국전 참전 용사인데요, 이등상사 이상의 참전자에게 주는 보훈병원 교통편 등 복지혜택을 사병출신에게는 주지 않았습니다. 연금이야 차별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것까지 차별하는 것은 심하다는 생각을 적어 61년 한국일보에 보냈더니 실렸더군요.
그 이후 사회부조리를 주로 투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기고가 실린 지 38년만인 지난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화 작업이 추진중이라는 보도가 나와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강신영= 스포츠용구를 수출하다보니 1년중 반은 해외에 나가있습니다. 또 LG건설 재직시 사우디아라비아 4년, 독일 1년등 해외에서 장기체류했습니다. 이때문에 국제상식에서 봐서 문제가 되는 우리나라의 제도와 문화를 주로 투고하고 있습니다. 93년 겨울 외국인이 자주 드나드는 모범음식점에서 주인이 손님과 싸우는 것을 보고 「한국방문의 해」를 1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한심하다는 내용을 처음 써보냈더니 실렸습니다.
그 얼마 후 독일의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쇼핑백을 무료로 주어서는 안된다는 글을 썼는데 지난해 쇼핑봉투부담금제로 결실을 맺었어요. 이후 자신감을 갖고 글을 꾸준히 투고하고 있는데 200여편을 모아 「시시비비」(96년) 「사랑의 깊이만큼 세상을 본다」(98년)등 책도 펴냈습니다.
박동현= 대학선배가 하는 것을 보고 투고하기 시작했는데 92년 사회부패상을 성토하는 글이 한국일보에 처음 실렸습니다. 사진도 찍어 투고하는데 글과 사진을 합쳐 보통 일주일에 20-30편을 보냅니다. 작지만 꼭 고쳐야 할 사회 부조리 고발을 선호합니다. 지금까지 모두 500여편의 글과 사진이 게재됐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스크랩해뒀습니다. 우리집의 가보인 셈이죠.
고순자= 주부이다보니 92년 「여자의 마음」난에 수필을 처음 보냈습니다. 「독자의 소리」에는 생활속의 불편과 교육 문제를 주로 투고합니다. 특히 올해 의료보험조합의 무료검진에 갔다가 구강검사용 막대거울 하나로 여러 사람을 검진하는 모습을 고발했더니 주위에서 잘했다고 칭찬을 많이 합니다.
조합에서는 전화를 걸어 따지더니 결국은 『잘못했다』고 시인하더군요. 지방에 살면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고발할 거리가 더 많습니다.
홍승한= 저는 1학기때 국문과 교양과목 교수님이 『신문에 기고문이 실리면 A학점을 준다』고 하셔서 대학생활에 대해 처음 투고를 해봤는데 채택됐습니다. 이후 시간이 있을 때마다 대학생으로서 보고 겪는 문제점을 투고합니다.
_독자투고로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습니까.
박동현= 이상한 단체에서 전화를 걸어 기금을 내지 않겠느냐고 물은 적도 있고 관청이나 기업 등 잘못을 지적당한 장본인들이 심하게 항의하기도 합니다. 저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쓰지 않기 때문에 이들도 결국엔 승복을 합니다. 턱없이 비난하는 이들은 다시 독자투고를 통해 고발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신문이 독자들의 편을 들어주니까 힘든 것보다는 보람이 많습니다.
심영우= 제 글에 대한 반박문이 실렸을 때 괴롭습니다. 과거에는 독자투고가 같은 주제를 여러번 다루지 않기 때문에 재반박이 어려웠거든요. 한번은 「부락」이 일본의 천민거주지를 일컫는 용어이니 신문에서 쓰지말자고 투고했는데 다른 독자가 『사전에도 있는 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재반박문을 보냈더니 그것이 논쟁으로 발전, 결국 부락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후로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재반박문을 보냅니다.
강신영= 비판대상의 반발은 저도 박동현씨처럼 대응하니 사라졌습니다. 다만 주위에서 『원고료를 받아 챙기려고 그런다』『엉뚱한 공명심이다』라고 비판할 때 가장 섭섭합니다. 원고료라는 것이 거의 없고 저같이 사업하는 사람이 주위에 알려져서 도움이 될 일이 별로 없는데 말입니다. 힘들더라도 독자투고는 독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참여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라고 봐야하겠죠. 스스로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 권리도 없는 것입니다.
_독자투고를 열심히 하면서 스스로도 많이 바뀌지요?
박동현= 매사를 대충 지나치지 않게 됩니다. 잘못된 점을 찾으려고 하지요. 강신영= 관청이 일을 바로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뭐든지 부딪쳐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한번은 러시아에 갔다가 칼이 멋있길래 가져오려고 했어요. 공항세관에서 제대로 검색을 하나 알아보고 싶은 심사도 있었지요.
하지만 밤새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옳은 행동같지가 않아서요. 독자투고란 잘못된 것에 대한 고발이니까 저 스스로 올바로 살고 있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 비판정신으로 우리 사회가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하신다면요.
심영우= 결국 정신개혁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어요. 다른 나라는 새천년을 맞아 국민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잘 살게 할 것인지를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는데 우리나라는 지난 1년도 부정과 비리, 그리고 집안싸움으로만 허비했습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중요한 일에서부터 작은 일까지 모두 정신개혁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신영= 우리가 경제적으로는 성공했다고 하지만 기초질서에 대해서는 선진국에 무척 뒤졌습니다. 아무데서나 침 뱉고, 담배꽁초 버리고, 고성방가합니다. 이런 것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미래가 없습니다.
박동현= 저는 우선 지도층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층을 개혁한다고 말은 많았지만 국민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것은 없어요. 정치권은 여전히 자기몫만 챙기고, 재벌은 개혁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홍승한= 도덕성이 없는 것이 문제에요. 가장 깨끗하고 정의감이 있어야 할 대학생들도 보면 무척 비도덕적이거든요. 걱정스럽습니다.
고순자= 청소년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학원으로 내몰아 놓고는 공부 자체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학원에 가면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파출부까지 해서 학원보내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여중생도 담배를 피우고 초등학생도 탈선을 합니다. 공부의 개념부터 바뀌어야 하고 부모가 진정으로 교육에 나서야 합니다.
_우리사회가 변하기 위해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고순자= 투고를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의 고충을 풀어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마을에서 반골로 찍혀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한국일보도 소외층의 고통을 이해하고 반영하는데 노력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줄의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또 지방 독자를 좀더 많이 고려했으면 합니다. 너무 서울 위주로 제작되고 있어요.
홍승한= 신문에 정치권 얘기가 너무 많습니다. 서민들은 대개 정치인에 대해 반감이 많기 때문에 신문이 지나치게 많은 지면을 정치에 할애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강신영= 저도 정치문제가 실리는 2~5면은 잘 안봅니다. 어떤 때는 1면이 보기 싫어 사회면부터 보기도 합니다. 별 것 아닌 정치얘기를 시시콜콜히 하는 것보다는 사회계도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초질서 청소년교육 등 새세기에도 여전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가정과 학교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결국 신문이 나서야 합니다.
장기 캠페인이나 기획시리즈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데 앞장섰으면 합니다. 특히 신문사의 캠페인이나 기획물에는 전문가들이 주로 참여하는데 독자들의 의견을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아울러 다른 독자들도 적극 참여하라고 권합니다. 독자 하나하나가 사회의 감시자가 될 때 한국사회는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심영우= 「2002년 월드컵 맞이를 준비하자」는 캠페인을 한국일보에 제안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올림픽으로 사회수준을 끌어올렸듯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동현= 한 사건을 두고 이런 저런 의견이 있을 때 언론이 너무 사실만 나열하는 것이 불만입니다. 이러면 독자들이 신문을 읽어도 혼란만 생깁니다. 신문이 중심을 잡고 확실히 자기목소리를 내는 쪽을 선택했으면 합니다. /정리
이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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