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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1세기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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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21세기가 밝았다

입력
2000.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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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새 해가 밝았다. 해가 뜨고 그 빛을 만물이 받는 것은 여느 아침이나 다르지 않다. 바뀐 것이 없다.그런데도 다른 해가 뜨고 다른 아침이 밝았다고 사람들은 믿고 싶어한다. 눈에 띄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변해야 하는」 당위는 이 아침에 눈뜨는 모든 이들의 것인 탓이다.

우리는 참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이 그때다. 새 해, 새 세기, 새 천년이 아니더라도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이 가장 알맞은 때인, 바로 그 아침이다.

지난 밤과 오늘 해돋이 맞이가 야단스러웠던 데 무슨 뜻이 있는가. 왜 거창한가.

절박감이다. 낡고 병들고 천박하기 짝이 없는 가치들을 지금 내던지지 않으면 다시는 추악한 과거와 단절의 기회가 없겠기 때문이다. 파도처럼 밀려올 급격하고 강력한 미래의 도전에 대비하는 적응능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새 천년, 새 세기에 앞서 새 해조차도 살아남기 쉽지않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변해야 산다」는 명제를, 우리는 단단히 끌어안고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지난 한해, 한 세기와 한 천년의 끝자락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냈던 것인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거짓이 거짓으로 악순환하는 「허언(虛言)과 사위(詐僞)의 시대」에서 끝없이 허우적거린 우리의 일그러진 초상이 거기 있다. IMF경제국난을 기적적으로 극복해가는 성취와 보람이 「거짓의 사회」가 뿌린 악취로 한 순간에 헛것이 되어버리는 참담함도 목격됐다. 개인이든 국가 사회든,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그 어떤 「우리」도 정직하고 예절바른 새로운 창조적 가치들로 변화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불가측의 시대를 우리는 지금 맞이한 것이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올해는 이른바 「IMF 3년차 증후군」이 논란되는 시기다.가장 심각한 과제는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른 계층의 분화이고, 빈곤인구의 급격한 증가다. 20_80의 사회구조라든가 1,000만 빈민, 100만 실업자군의 고착화같은 숫자들은, 이들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적극적이고 실효적인 끌어안기 노력이 얼마나 다급한 일인지를 말해준다. 문제의 핵심은 상대적 격차를 갈수록 빠르게 초래하고 있는 경제구조에 있다. 특히 경기회복에 따른 증시의 지수상승,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부동산을 비롯한 여러 「들뜸」 현상들은 자칫 사회적 불안과 갈등을 불러올 불씨가 될 수 있다. IMF 졸업파티라도 벌이는 듯한 가볍고 속없는 몸짓들을 정부당국자부터 경계해야 한다. 실업자는 물론 실망실업자와 불완전 취업자까지를 망라한 정권_국가차원의 「실업줄이기」 총력 쏟아붓기가 더 절실한 우리의 현실이다.

새 세기, 새 천년의 첫 해인 올해는 16대 총선의 해라는 점에서 우리의 역사에 특별하게 기록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인지는 궁극적으로 국민의 손에 달렸다. 국민이 무엇을 심판하고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정치가 한단계 성숙할 것인가, 땅에 떨어진 신뢰가 다소라도 회복될 것인가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극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정치의 발전은 물론 나라의 미래도 암담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불법과 금권과 관권 선거라는 시비가 사라져야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곁을 떠난 정치를 국민 곁으로 되돌아 오도록 정치권이 먼저 정신을 차려줘야 한다는 점이다. 의회와 정당제도의 원론에 충실한 정치, 대화와 설득과 타협으로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되찾아야 한다. 그때에 그것을 일러 「밀레니엄 새정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학자들은 새로운 세기를 지식이 생산기반이 되는 사회로 보는데 일치한다. 사이버경제 또는 지식경제가 그 새로운 이름이다. 그 사회는 너무나 신속하고 혁명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따라잡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그리고 이 불안정은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 조성된 철학과 가치관의 공백의 틈새로 도덕적 위기를 불러들인다. 우리가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단단히 예비해야하는 까닭이 이것이다.

우리는 이제 중대한 결단의 자리에 섰음을 느껴야 한다. 모두를 천민화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역설적이지만 자본주의 본래의 얼굴을 되찾는 새 세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정직, 근면, 절제의 정신이 자본주의 본래의 얼굴이다. 「거짓과 들뜸」의 사회를 청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큰것보다는 더 작은 것, 많이 쓰는 것보다는 적게 쓰는 것, 포만(飽滿)보다는 소식(素食), 큰 목청보다는 작은 목소리가 더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모습이라야 「인간의 얼굴」이다.

저마다 제몫챙기기에 열중하는 낡은 유습을 폐기처분하고 「돈만 벌면 그만」식의 졸부 행태를 버리는 것도 새로운 세기의 사람다운 품성일 것이다. 모든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청산, 「거짓과 들뜸」의 사회에 편승하는 한탕과 대박의 풍조도 묵은 세기에 파묻고 가야할 악덕이다. 인간의 얼굴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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