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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2000] 이어령의 밀레니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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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2000] 이어령의 밀레니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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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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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남극이나 북국만 빼놓고 전 지구를 국가로 덮었던 세기라고 한다. 그러나 21세기는 국경이 무너지고 국민국가가 서서히 해체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현상은 이미 구소련의 붕괴과정에서 나타났으며 유럽의 EU 통합국가형태로 그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디지토피아(디지털과 유토피아의 합성어)의 인터넷은 더욱 더 그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 어떤 나라의 권력도 인터넷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정부도 인터넷의 세계네트워크에 대해서는 경찰국 노릇을 할 수가 없다. 이 사이버공간을 파괴하려면 지구 전체를 원·수폭으로 폭격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사이버 커뮤니티는 국가단위의 국경에 상관없이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이 자유로 자기 공간을 만들어가는 신대륙이다. 이 순간에도 인터넷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자기증식 속에서 끝없이 지구로 번져가고 있다. 역사상 어떤 제국도 이렇게 인구가 불어가고 영토를 확대시켜간 예란 없다.

인터넷에서 그칠 이야기가 아니다. 달러는 이미 미국의 국경을 넘은 세계의 지폐가 된지 오래다. 미국정부, 그리고 그 중앙은행이나 시중은행의 힘으로도 바다의 조수처럼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거대한 달러의 흐름을 막지 못한다. 사이버 머니와 마찬가지로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한 세계시장 역시 일찍이 보덜리스(borderless·국경없는)라는 말을 앞세우고 국가의 통제선 저 켠에서 장을 벌이고 있다. 국경없이 만들어진 글로벌상품은 예거할 수 없이 많다.

통신위성에서 쏘는 텔레비전전파는 또 어떤가. 그것은 포첩망으로 잡을 수 있는 잠자리떼같은 것이 아니다. 검문소나 세관을 거치지도 않고 남의 나라 문지방을 마음대로 드나든다. 노크도 없이 들어온 일본 중국의 위성통신들이 우리의 아랫목 차지를 하고 있다. 조직체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NGO(비정부기구)가 세계와의 연대로 국가의 관료조직을 능가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미국에서는 NGO NPO(비영리기구)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2,000만 명이 넘고 일본만 해도 2,3년 전에 NPO의 특수법인의 법이 마련되었다.

한 마디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21세기는 통제 불능의 아나키(무정부상태)시대라고 할 수 있다. 국경 안이라고 해도 전통적인 제품의 개념까지도 그 경계가 무너져 전화기에 라디오가 달리고 냉장고에 인터넷이 결합되는 하이브리드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젓가락이 아니라 포크로 스파게티를 먹는 아이들을 관찰해 보면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고 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스파게티는 국수의 이탈리아의 서양버전이다. 마르코폴로가 중국에서 가져온 국수에다 미국 신대륙에서 들어온 토마토로 소스를 만들어 만든 것이 바로 스파게티라는 음식이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들이 먹고 있는 그 스파게티의 국수가락에는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미대륙등 세 대륙의 문화가 한 데 합쳐서 얽혀 있는 셈이다.

요리를 먹는 방법도 그렇다. 요즘 아이들은 국수 냉면까지도 포크로 먹는다. 그러한 스파게티문화에서 콜라에 밥을 말아 먹는 아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스파게티문화를 극대화하고 현대화하면 요즘 유행하는 퓨전 메뉴가 된다. 한식과 양식의 이질적인 요리시스템을 한 데 섞어서 새로운 맛을 창출한다. 그래서 심지어 퓨전(Fusion)을 미래의 비전(Future Vision)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집이 양옥으로 변하고 옷이 양복으로 바뀌는 시대에도 음식만은 밥과 김치로 문화의 전통성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의식주문화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식문화도 퓨전화하고 있다.

먹는 음식에서부터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21세기를 움직이는 키 워드는 탈경계와 이종배합(異種配合)의 퓨전이다. 20세기는 개체를 시스템화하는 것이었지만 21세기파워는 육군과 해군을 합친 해병대처럼 서로 다른 개체의 시스

템을 공존공생시키는 힘이다. 그런 힘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지식과 톨러런스(Tolerance·관용)에서 나온다. 그 톨러런스라는 말 역시 국수가 스파게티가 된 것처럼 우리 조상들이 가장 많이 써왔던 덕(德)이라는 말의 서구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정치든 경제든 심지어 군사적인 것까지도 덕을 내세운 통치였다. 중국의 삼대 소설이라고 하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모두 무능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유비 현덕이 그렇고 송강이 그렇고 삼장법사가 그렇다. 그러나 유비 현덕이 있기 때문에 공명의 지혜와 장비의 힘이 한데 어우러져 조조를 이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탈경계시대와 같은 21세기의 삼국지, 21세기의 서유기는 장비도 공명도 그리고 손오공이 아닌 관용성-좀 더 우리에게 낯익은 말로 하자면 덕(德)이라는 바로 그 덕목이다.

태양에서 구름으로, 구름에서 바람으로, 바람에서 벽으로, 그리고 다시 벽에서 쥐로 한 바퀴 돌아와 쥐신랑을 맞는다는 설화처럼 21세기의 큰 이야기는 모든 가치와 제도가 한 바퀴 돌아서 아시아사람들이 아시아의 덕과 인(仁)으로 제 자리를 찾아오는 세기가 될 것이다. 나라의 경계가 무너진 세기에서는 우주적 교감, 생명체가 서로 교감하는 윤리에 뿌리를 둘 수밖에 없다. 그것이 너 죽고 나 죽자식 20세기의 전쟁패러다임이 아니라 너 살고 나 살자의 협력 상생의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이다. 그리고 거기에 천년의 문을 여는 21세기의 우리 희망이 있다.

다양화 다원화사회로 옮겨가는 21세기사회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덕치를 요구하듯 정보통신기술이 이끌어가는 사회에서는 그 글자에 들어 있는대로 정과 믿음이라는 한국적 전통가치가 새롭게 평가될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로 상징되는 21세기의 신대륙은 한 마디로 정이 가장 결핍된 사회이다. 아이들이 전화를 실컷 걸고 나서 자세한 것은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것이 전화로는 정을 느낄 수 없기 대문인 것이다. 그리고 공산품과 달라서 믿지 않으면 휴지쪽만한 가치도 부여할 수 없는 것이 정보라는 상품의 가치이다. 정보의 교환과 접속, 그리고 생활화는 믿음을 전제로 한 인간활동이기 때문에 21세기의 덕목은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정과 믿음의 문화가 귀한 자원이 될 것이다.

21세기의 인류가 원하게 되는 가치는 행복과 안전이다. 20세기는 물질성과 편리함을 추구한 세기였고 그 때문에 인간은 쓰레기 에너지등으로 인한 공해와 여러 가지 환경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건강문제가 생활의 전면으로 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와 환경의 안전문제가 우선순위의 제일로 꼽힌다. 더구나 고령화사회가 오면 60세로 정년퇴직이라는 사회적 죽음을 선고받고도 자연사하는 데는 20, 30년의 여생이 남게 된다.

옛날에는 사회사와 자연사가 거의 일치했기 때문에 노인문제가 사회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떻게 여생을 인간답게 덜 고통스럽게 살 수 있는가 하는 어메니티(Amenity)가 미래를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의학품도 21세기의 개념으로 보면 치료제가 아니라 안전과 쾌적을 도와주는 어메니티 메디신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비아그라와 같은 것이 그 징후의 하나이다.

또 노인유람선업자가 갑자기 억만장자가 되는 유망업종으로 급부상하는 것처럼 고령화사회에 대응하는 새로운 의료황금시장, 이른바 노인시장의 특수를 놓고 전세계가 경쟁을 벌인다. 지금까지는 암이나 에이즈같은 불치병 치료에 의료연구와 기술을 집중했지만 이제부터는 건강하게 인간답게 하루라도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노인들의 외로움을 충족시키는 실버 마켓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살 이하의 아이들을 전문치료하는 소아과가 있다면 마땅히 일흔살 이상의 노령자를 위한 노인과가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들의 인체 구성이 보통사람과 다르듯이 노인치료도 보통의 의학지식이나 기술을 가지고는 안된다. 아동잡지가 있으면 글자체와 그 내용이 어울리는 노인잡지도 있어야 한다. 아이들 기저귀가 나오면 노인용 기저귀도 그에 못지 않은 수로 팔릴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된다.

정보기술은 이러한 21세기의 요구를 풀어주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물질은 나누면 작아지고 없어지지만 정보는 나눠도 없어지거나 작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불어나고 늘어가기 때문에 정보기술의 원리를 사회에 응용하면 많은 산업사회의 그늘을 없앨 수 있다. 정보의 특성인 「쉐어(Share」의 기술을 잘 이용하면 기업이나 정치등의 경쟁관계를 협력관계로 넓혀갈 수 있다. 동시에 냉장고와 맥주, 여행사와 항공사등의 제휴에서 보듯 정보네트워크는 공생관계의 기업풍토를 만들어낼 수가 있다.

정보기술은 성장과 환경보전의 두 가지 욕구를 동시에 해결해 줄 수가 있다. 흔히 산업혁명 당시 280ppm이었던 대기권의 CO2 농도가 150년동안 360ppm 가까이 올라가서 지표의 온도는 전지구 규모로 0.5도가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전자상거래가 보편화하면 모든 것이 주문생산방식으로 바뀌게 되기 때문에 출판의 경우 반품률이 줄어들어 폐지율이 내려가 40%를 절약할 수 있다. 갈브레이드의 지적처럼 『경제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생활수준은 크게 높아졌지만, 공공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사회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빈민가 어린이들이 초호화판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고급 주택가에는 깨끗하고 우아한 주택이 즐비하지만 그 지역으로 가는 도로변은 지지분하기 짝이 없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서점마다 다양한 서적을 판매하고 있지만 공공 도서관에는 읽을 만한 책이 태부족이다』 이와 같이 공공서비스 부족에서 오는 사회의 불균형을 없애는데 있어서는 인포메이션 푸어(정보빈자)와 인포메이션 리치(정보부자)라는 새로운 형태의 빈부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벌써 이 정보복지를 위해서 미국 샌프랜시스코시는 전화통화료를 무료로 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전세계와 연계된 통신료는 세계와 평준화해야만 어깨를 같이 하고 지구촌의 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므로 통신의 공공서비스는 교통등의 인프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20세기의 모든 문제들이 21세기의 난제로 돌아온다. 그러나 왜 우리는 세발자전거를 타다가 두발자전거를 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리스크가 크면 그만큼 이익이나 만족도 크다. 두발자전거는 분명 세발자전거보다 위험하고 타기 힘들지만 세발자전거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기다리고 있다. 21세기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세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갈아타듯 그렇게 연습하고 익숙한 훈련을 거쳐 새 환경을 스스로 배워가는 기회 그 자체이다.

■주요 약력

-1934년 충남 온양출생 -서울대 문리대, 동 대학원 -서울대 문리대 강사, 단국대 전강, 도쿄대 객원연구원, 국제 일본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 이화여대 기호학연구소장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논설위원, 경향신문 파리특파원 -「문학사상」 주간, 초대문화부장관 -현재 새천년준비위원장,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예술원회원, 제2건국위 공동위원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일본 문화디자인상 대상, 일본 국제문화교류재단 대상, 맹호훈장, 녹조훈장 -저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전집」 「장군의 수염」(소설)등 다수

/홍인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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