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만들어져 일반에 공개될 때까지 무려 1년. 그 긴 시간 「거짓말」(감독 장선우)은 숱한 논란과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그 주인공은 한편으로는 한국영화계의 온갖 병폐를 비춰주는 「거울」이 됐다.작품성보다는 문화적 사건으로 이름을 높이고 흥행에 성공하려는 선정주의, 그것에 대한 턱없는 찬사, 왜곡된 표현의 자유와 여전한 가위질, 공정한 경쟁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급급하거나 감정대립으로 상대 견제하기, 새로운 통로를 통한 불법유통과 작품왜곡, 그것을 야기시킨 제도의 엉성함, 작품평가와는 별개로 「거짓말」(제작 신씨네)은 우리 영화가 버려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징하게 가르쳐 주고있다.
「거짓말」은 시작부터 무모했다. 원작소설(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이 음란물로 규정됐는데 영화라고 다를까. 「표현의 자유」가 출판보다는 대중적인 영화에 더 엄격하다는 사실도 바보가 아니면 누구나 다 안다. 그런데 장선우 감독은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도 「쉬쉬」하면서. 그의 문화적 사건 일으키기 전략은 「나쁜 영화」에서 이미 써먹은 것이다.
실제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전 작품 「너에게 나를 보낸다」(이 영화 역시 원작은 장정일의 소설)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포르노』라고 잘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감독은 그것을「표현의 자유, 사회적인 폭력과 억압과 금기에 대한 도전, 진흙 속의 연꽃, 씻김」이라 했다.
그의 교묘한 전략에 말려 「진보와 작가주의」로 불려지길 원하고, 그것이 곧 지식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덩달아 과장된 가치와 의미와 예술성을 부여했다. 그 위세를 타고 한 장면도 짜를 수 없다고 선언한 감독. 그러나 그의 선언은 두차례 등급보류를 거치면서 결국은 「거짓말」이 됐다. 처음보다 13분이나 줄어든 필름. 상영을 위해 한국 영화는 예외없이 작품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거짓말」이 던진 또 하나의 화두는 『이제 영화는 관객들의 판단에 맡기자』였다. 그 주장은 두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라는 모순된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의도로 출발했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잣대로 여전히 가위질만을 강요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김수용)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과 성인영화전용관 신설 논란이다.
달리보면 「거짓말」은 모순투성이인 법과 그 법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기주의에 따른 견제의 희생물인지도 모른다. 영화계의 파벌주의는 영상물등급위의 인적 구성에까지 뿌리박혀 있어 심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 신철 신씨네 대표는 『그 속을 헤쳐나오느라 진이 다 빠졌다』 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심의를 통과한 것도 김수용 위원장이 말한 『영상발전을 위한 좀 더 여유있는 자세』때문이 아니라 이 영화와 흥행경쟁을 벌여야 하는 특정집단의 이해관계와 멀어진 시점이 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인터넷에 의한 불법 유통과 내용 왜곡도 「거짓말」이 던져준 문제였다. 디지털시대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어야 하는지 아직 한국영화계는 논의조차 하지않고 있다. 이런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문제점을 던지며 「거짓말」은 새로운 천년의 새벽(1월8일)에 관객들을 만난다. 진보적인 예술이라고 박수를 친다고, 3류 포르노물라며 구역질을 낸다고, 아니면 흥행에 성공하거나 실패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영화제작자와 정책자와 관객 모두 풀어야 할 숙제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거짓말' 줄거리와 의도
J는 현재 별볼일 없는 조각가. 그가 만난 Y는 언니들과 달리 빨리 처녀를 떼어 버리고 싶은 생각을 가진 여고생. 둘은 만나 반말을 하고, 섹스를 하고 또 섹스를 한다. J는 엉덩이를 토닥거리던 버릇이 심해져 섹스 도중 매질을 하는데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Y는 단지 J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매질을 견디고, Y에게 매질도 한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매질을 견뎌낸 것인지, 즐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을 옥죄던 오빠를 사고로 죽게 하고 학교로 돌아간다. 그리고 수개월 후 파리로 돌아가 살고 있는 J를 만난다. 그가 맞고 싶어하던 곡괭이 자루 하나를 들고.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바뀐 세상을 보여줄 수는 있다. 영화 「거짓말」은 거짓말 같은 상황을 통해 안전하지만 위선적인 권력의 폭력적 구도를 흔들어 보려 한다. 포르노적 설정으로 문제가 된 「가학- 피학」부분은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지식인이자 소시민인 조각가와 본능에 충실한 여고생의 「비난받아 마땅할 애정행각」을 통해 세상의 질서를 파괴한다.
J의 캐릭터는 그런 위악(爲惡)의 매력을 가장 크게 발산한다. 그는 선량한 시민이자 권위에 복종하는 소시민이다. 세상에 대한 욕지기는 속으로 할 뿐 그는 호텔에서 나오다 마주친 스승에게 비굴하리만치 깍듯이 인사하는 심약한 인간이다. 그러나 영화는 J의 변태적이고도 반복적인 성행위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Y를 통해 우리의 둥지이자 함정인 「폭력의 얼굴을 한 권위」의 해체를 시도한다. 영화는 이런 해석이 가능한 지점과 관음증을 자극하는 상업적 코드가 맞닿는 지점에 서 있다. 감독의 이전 영화 「꽃잎」 「나쁜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성(性)집착증적 연출 태도가 이런 혐의를 더욱 부추긴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거짓말' 흥행 성공여부...이미 본 사람들이 극장에 올까
인터넷이나 CD롬을 통해 「거짓말」을 본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될까. 흥행의 최대변수는 불법유통된 무삭제판 비디오나 인터넷상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얼마나 극장으로 몰릴까 하는 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무삭제판 영화를 관람한 회사원 S모씨는 『극장에 다시 가서 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영화 전편을 심도 깊이 관람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볼 건 다봤다」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벗었다는데」라는 호기심으로 영화를 관람한 이들은 어차피 「극장용 관객」은 아니었다는 견해도 유력하다. 「O양 비디오」관람객 수준인 이들은 어차피 극장 관객층과는 별개 집단. 불법유통의 비디오도 그 파급력이 크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비공식적으로 30만명이 보았다는 「러브 레터」가 50만 관객을 끌어들인 것도 「거짓말」 흥행 전망을 밝게 한다. 결국 문제는 작품의 완성도. 「웃기는 영화로 봐달라」는 감독의 주문처럼 관객들이 영화를 성개방을 통한 권력 비웃기로 본다면 성공. 그러나 유사 포르노로 「거짓말」을 대한다면 전망이 그리 밝은 편만은 아니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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