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12월초.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나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입학원서를 쓰면서 C고는 물론 K고도 안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며칠후, 모처럼 외식을 하던 중에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아비가 자갈인데 자식이 바위될 턱이 없지. 그러나 아비가 자갈로 콘크리트 바위를 만들었으니 너도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나를 위로하셨다. 가슴이 찡했다. 평소 매 한번 들지 않았던 아버지께선 깊은 상처를 받았을 터인데도, 그것을 또다시 사랑으로 감싸주셨기 때문이다.
스스로 독해지자고 결심했다. 어차피 우리가 상처를 먹고살기에 독성이 강한 균보다는 좋은 균을 주고받자고 결심했다. 그러자 공부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고교생활이 시작되자 중학교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자갈끼리 모였기에 가끔 돌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그렇지, 인정 많고 의리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선생님들 또한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무척 애쓰시는 모습이었다.
어쩌다 마주치면 『넌, 할수 있어!』라고 용기를 주시는가하면, 수학여행을 안가겠다는 나에게『네가 안가면 나도 안간다』면서 마치 친구처럼 대해주시는 모습에 정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보면 무척 자존심이 상할 터인데도 『저 친구는 지금 평강 공주와 협상 중이라 앞날이 훤하지만, 너희들은 그렇지도 못하니 열심히 공부해!』라고 웃기면서 기어코 깨우고야마는 그 기지에서 참사랑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시멘트 가루 속에서 자갈을 굴린 지도 어느덧 3년. 뭔가 좀 굳어질만하니까 벌써 뒤에서 미는 것같다. 아직 작품이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제 내일이면 정동진에서 해가 뜨고 뉴밀레니엄의 시대가 열린다. 그리고 또 우리는 선생님들의 기대 속에 또다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그런데 누가 감히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고 속단한다는 말인가. 선생님의 희망은 오직 제자들이 잘 되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슈마허의 말을 되새기면서 지나온 3년을 돌이켜본다./고교3년회상 춘천성수고3 신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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