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해가, 근대화를 향해 달린 1백년이, 한민족의 단일국가를 이룬 1천년이 저물고 있다. 시간의 역사는 빛의 역사이다. 우리는 빛을 보내고 또 빛을 맞는다.새 천년의 첫 빛을 잡으려는 사냥꾼들이 남태평양 피지섬과 독도, 포항, 변산반도에 섰다. 현대의 과학기술로 가는 천년의 빛과 오는 천년의 빛을 인도하려는 젊은 과학자들이다. 충남 아산 선문대학교 차세대반도체연구소 최성수(崔性秀·49) 김호섭(金浩燮·39) 안승준(安承濬·42) 김대욱(金大旭·38) 김영정(金永靜)교수팀. 이들은 지난 두 달동안 「햇빛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새천년맞이 행사의 일환으로 31일 일몰, 2000년 1월1일 일출시 햇빛으로 불을 붙이는 「새천년 햇살감지 점화장치」 4대를 개발한 주역들. 이들은 이 점화장치를 들고 최교수는 피지섬에, 김호섭교수는 독도에, 안교수는 포항 호미곶에, 김대욱 김영정교수는 변산 격포항에서 태양을 마주하고 있다. 변산반도에서 채화되는 마지막 일몰의 불씨는 헬기로 공수돼 서울 광화문 횃불봉에서 1월1일 자정까지 타오르게 된다. 또 지구촌에서 가장 먼저 새 천년이 시작되는 피지섬과 독도, 포항에서 채화한 일출의 불씨는 포항 호미곶에 마련된 점화대에서 2002년까지 보존된다.
새천년준비위원회가 1900년대 마지막 일몰과 2000년대 첫 일출의 햇빛을 채화하겠다는 행사를 계획해 기술지원을 의뢰한 곳은 과학기술부. 과기부는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기상청 연구원, 과학재단 전문가등으로 구성된 「선샤인 21」팀을 구성, 가능한 모든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그 결과 햇살의 변화를 신호로 삼아 불씨를 지피는 선문대측의 제안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여겨져 채택됐다.
선문대팀의 햇빛사냥 아이디어는 광센서가 햇빛량의 변화를 감지하면 이것을 신호로 삼아 연료를 뿜어올리고 불을 지피는 시스템. 햇빛을 모아 열로 변환시켜 직접 채화하는 방법도 가능하긴 하지만 해가 지는 순간의 햇빛을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교수들은 학생 20여명과 함께 새벽 1,2시까지 연구실에 남아 모두 12종류의 다양한 광센서 개발에 전념했다. 적외선영역, 다양한 가시광선영역에 각각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도체 센서들이다. 이를 천(天) 지(地) 인(人)사상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디자인, 4대의 감지장치를 제작했다. 새천년준비위가 제공한 예산 1억3,000만원이 동이 나자 학교측이 모자라는 예산을 충당했다.
점화장치를 개발하는 데 가장 큰 난관은 어떤 센서가 일출·일몰의 햇빛량 변화를 놓치지 않고 반응할까 하는 것. 동틀 무렵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연구팀은 실제 일출과 일몰의 햇빛을 잡아보는 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적외선 센서가 가장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20일 선문대 운동장에서 열린 시범점화식에서는 구름낀 날씨의 흐릿한 햇빛을 성공적으로 잡아내 성능을 입증했다.
선문대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으로 이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는 최성수교수는 『과학의 시대가 될 2000년의 첫 햇살을 과학기술로 잡아낸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며 『이 불씨가 한국의 미래를 밝히는 희망의 빛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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