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경기도 북부지방에 대규모의 홍수가 발생했다. 몇 년 전에도 물에 잠겨 피해가 극심했던 문산 일대가 또다시 물에 잠겼고 주민들은 허탈에 빠졌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많은 국민들이 수재의연금 모금에 참여하였고 민·관·군은 복구작업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그러나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시점에서 많은 피해주민들을 또 한번 좌절케하는 사례들이 보도되고 있다. 구호품이 공정하게 전달되지도 않았고, 피해조사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바람에 피해주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다고 한다. 심지어 보상금이 이중으로 지급되기도 하고, 그 지역에 살지도 않는 집주인에게 보상금이 주어지는가 하면 피해를 입은 세입자에게는 전혀 보상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게다가 보상금 지급을 책임진 공무원들은 자세한 지급내역을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정성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공무원들의 업무수행 결과에 대해 자주 공정성 시비가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수해보상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오염문제도 그렇고, 피의자를 다루는 데에도 공정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공무원들은 자신의 업무수행이 정해진 규정과 절차에 맞춰서 정당하게 이루어졌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시비는 끊임없이 뒤따른다. 이러한 불공정성을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제도적 장치를 도입하기도 하였고, 공무원들의 의식개혁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오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고 있다.
어째서 고쳐지지 않는가. 직무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이정표(milestone)가 없기 때문이다. 엄격히 규정된 업무수행절차만 있을 뿐이다. 공무원들은 규정된 절차를 「무리 없이」 준수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간주해 버린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 공무원들이 형식주의라는 함정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잡한 규정과 절차에 얽매임으로써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야릇한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이는 마치 먼 길을 떠난 나그네가 이정표 없이 눈 앞의 발자국만 좇아가다 목적지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 없다. 반대로 좋은 성과를 의식하는 유능한 공무원들조차 얽히고 설킨 규정들 때문에 오히려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무수행 과정에 이정표를 달아주어야 한다. 여기서 이정표란 직무의 성과책임(account ability)을 말한다. 직무의 목적과 업무수행 절차 사이에 성과책임이라는 이정표를 달아줌으로써 직무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문산 지역의 수해복구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피해보상의 공정성 확보와 같은 이정표가 분명하게 주어져 있고, 이를 평가할 수 있는 성과측정 지표가 있었더라면 피해복구 과정의 불공정성으로 더 큰 상처를 입게 된 주민들이나 행정의 불투명성에 분노하는 시민들은 없었을 것이다.
/최동석
조직개혁전문가
한국은행
직무평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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