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클릭.www 세상읽기] 걷자, 세상이 보인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클릭.www 세상읽기] 걷자, 세상이 보인다

입력
1999.12.30 00:00
0 0

함께 점심을 먹은 후배에게 『좀 걸을까?』하자 놀란듯 묻는다. 『걸어요?』 그 후배는 서울길은 되도록 걷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매연 속을 걸으며 신경질적으로 울려대는 차들의 경적을 듣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친다고 했다.사실 서울거리는 걷기 괴롭다. 차들은 보행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려들기도 하고, 인도 바닥은 울퉁불퉁. 밤이면 중심가 보도는 아예 퀵서비스 오토바이 차지다. 『그래도 걸어 보자』고 후배를 유혹해 현대화랑 금호화랑 학고재 국제화랑 북카페가 늘어서 있는 사간동길을 20분쯤 걷고 나자 그가 말했다. 『서울시내에도 걸을 만한 길이 있네. 걸으니 역시 기분좋고』

많은 사람이 도심의 거리 걷기를 피하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걷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남산순환도로, 용산시민공원, 양재동 시민의 숲을 가보면 새벽과 밤에도 걷는 사람을 보게 된다.

한 여행사는 제주도 해안도로 걷기를 상품화했다. 도시를 걷자는 운동도 시작됐다. 「걷고 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dosi.or.kr)」는 도시를 걷는 이가 많을수록 인간의 크기(human scale)를 넘어선 도시가 다시 우리 인간이 살고 싶고 걷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다며 종로 북촌부터 걷자고 한다. 외국의 많은 도시에서도 살기 좋은 지역사회 만들기는 안전한 보행권을 외친 보행자모임에서 출발했다.

걷기는 스포츠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걷기운동(walking sports)」이라는 말도 생겼다. 한국체육진흥회(apa.or.kr)사이트는 우리나라까지 19개국이 해마다 걷기대회를 열고 있으며 걷기를 열심히 하면 「125세까지 산다」고 속삭인다. 주말마다 열리는 세계 각국 아마추어들의 마라톤대회 일정표(geneseesites.com/marathon/marathns.htm, racegate.com)에는 5마일, 혹은 10마일 거리의 빠르게 걷기(racewalk)가 들어 있다.

몇 년 전부터 매일 시간나는대로, 집 근처 양재천길을 1시간쯤 걷는 나는 걷기예찬자이다. 걷기를 하면 몸이 건강해진다는 상식론이나 일주일에 20분 이상 3회 시속5㎞로 걸으면 일찍 노화하는 뇌의 전두엽에까지 혈액순환이 증가돼 뇌가 늙지 않는다는 미 일리노이대(uiuc.edu)연구팀의 최신보고에 반해서가 아니다.

이틀씩 사흘씩 걸어 고향을 다녀온 NYT의 한 기자나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걷기예찬론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한다. 『걸으며 보는 나무와 풀과 길거리는 차 타고 가며 보는 나무와 풀과 길거리가 아니다. 뚜벅뚜벅 걸으며 보면 사물들은 나와 관계있는 사물로 바뀐다』 또 힘에 부칠 만큼 빨리 걸으면 어느 순간 정신이 집중되어 잡생각은 사라지고 무엇에든 맞설 수 있을 것같은 씩씩함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도시와 자동차와 컴퓨터에 갇혀 살 일이 아니다. 걷자. 좋은 도시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뇌의 노화방지를 위해, 씩씩함을 얻기 위해 많이 걷자. 새로 생긴 건물, 우스운 간판, 사람 구경은 걷기가 주는 덤이다.

박금자 편집위원

parkj@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