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New Millennium)」을 바라보는 현 시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지난 1,000년을 돌아보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지난 100년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파란 만장한 시기였다.20세기 전반 36년동안의 식민통치,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사회는 완전히 해체된 반면에 생활수준의 향상은 거의 없었다. 역사 통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앵거스 매디슨(Angust Maddison)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1900년에서 1950년 사이 한국의 1인당 소득 증가율은 연간 0.1%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입장에서 20세기 후반의 50년은 전반의 50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상대적 침체기였던 50년대를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지난 50년간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 증가율은 연간 6%대에 이르렀는데, 이는 12-13년만에 소득을 배가시키는 엄청난 성장률인 것이다. 이러한 고성장 때문에 60년대 초반 1인당 소득이 아프리카의 케냐와 비슷하고 가나의 3분의2 수준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 대열에(말석에나마) 끼게 된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고성장 국가들의 20세기 후반의 경제성장은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1인당 소득 연간 증가율이 19세기 산업혁명 때에는 1%선, 그리고 50년에서 75년 사이의 소위 자본주의 황금기 때에는 3%선에 불과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고성장 국가들이 「기적의 경제」로 일컬어 지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그동안 이룬 업적에 대해 국내외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는 후진적인 제도와 관행에 기초하여 정치적 탄압을 통해 억지로 이룬 「신기루」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40여년 간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에는 엄청난 희생, 부조리, 그리고 갈등이 따랐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주장이다. 우리 근로자들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견뎌냈으며, 군사 독재가 30여년 간 지속되었고, 사회 여러 면에서 부정 부패가 만연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룬 업적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모든 면에서 발달한 선진국들의 경우, 그들이 산업화를 시작한지 100여년 지났던 20세기 초반까지도 아동 노동이 성행하였고, 여성과 저소득층은 투표권도 없었으며, 근로자들은 법정 노동 시간 8시간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산업화 50여년 만에 이른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물론 선진국들이 예전에 우리와 유사한 단계에 있을 때 우리보다 잘못했다고 우리가 잘못한 일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지금 유행하는 것처럼 우리 것은 대부분 잘못되었고 선진국들이 하는 것은 무조건 옳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사실과도 다른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지난 200여년간의 식민지 지배와 후진국의 설움을 통해 우리가 알게 모르게 가지게 된, 그리고 최근 경제 위기를 통해 증폭된, 「후진국 콤플렉스」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우리의 제도와 관행 중에 어떤 것이 보존 가치가 있고 어떤 것들이 과감하게 고칠 것들인가를 냉정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냉철한 시각을 가질 때에만, 우리는 새로운 세기, 그리고 새 천년에 맞이 할 국내외적인 여러 가지 도전들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장하준·영국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