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환경운동연합에는 개인택시 운전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환경통신원모임이 있다. 직업 특성상 서울시내를 누구보다 많이 돌아다니고, 환경 훼손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기때문에 환경운동에서 이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하지만 환경통신원은 정말 우연한 계기때문에 만들어졌다. 나는 91년 페놀사건과 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KBS 심야토론에 참석한 뒤 새벽2시께 방송국을 나왔다.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귀가했지만 차가 없었던 나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운전사가 『왜 이렇게 늦게 집에 가느냐』고 묻자 나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운전사는 『나도 환경에 관심이 많다』며 『명함을 하나 주면 조만간 한번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뒤 아무런 연락이 없어 그 사람을 까맣게 잊었다.
6개월 뒤 다시 심야토론에 참석했다. 그때도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데 운전사가 백미러로 나를 보더니 『최열선생 아니냐』고 물었다. 가만히 보니 6개월 전 나를 태워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다시 만날 확률은 별똥에 맞아죽을 확률보다도 낮을 것』이라며 반가워했다.
택시 안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택시를 운전하면서 차량에서 내뿜는 매연을 보고, 트럭이 심야에 산업폐기물을 싣고 가 논두렁에 버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환경감시 활동을 더 강화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와 나는 택시운전사들을 중심으로 한 환경감시원 조직을 만들기로 약속하고 본격 작업에 들어갔다. 그 뒤 교통방송 등에 출연, 그 택시운전사를 두 번이나 만난 사연을 이야기하고 이러이러한 조직을 만들려고 한다 했더니 수백명의 택시운전사들이 연락을 해왔다.
드디어 92년 봄, 환경통신원이 탄생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이들이 환경활동에 시간을 쓰는 바람에 수입이 줄고 이때문에 부인들과 말다툼도 많았다. 그래서 부부동반 MT를 가고 취지를 설명했더니 이제는 부인들이 더 적극적이다.
그때 그렇게 탄생한 환경통신원은 뛰어난 기동력을 무기로 지금은 환경감시활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최열·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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