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부모를, 자식을, 아내를, 남편을 묻고 산을 내려와 본 사람은 안다. 한 줌 재가 된 육신을 강물에, 바다에 실어보낸 사람은 안다. 그들을 그리워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쓸쓸한가를. 이제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그저 꿈에나 기대어야 하는 길고 긴 시간만 남아있다는 것을.그리움을 치유하는 데 세월은 결코 약이 아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욱더 보고 싶고 그립고」 그러나 볼 수 없어 안타까운 사람이 먼저 떠난 가족이다. 때로 생각한다. 하늘나라가 멀어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발길 닿을 순 없어도 목소리 아니 글이라도 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에 부치지 못할 편지를 썼다가 지운 사람도 숱할 것이다.
「눈물의 편지」에는 가족을 먼저 떠나 보낸 사람들이 편지의 형식으로 고인에게 띄운 글이 하나 가득 담겨 있다. 고양시 용미리에 만든 5곳의 납골 시설을 관리하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장묘사업소(전화 02_2290_6573, 인터넷 www.sisul.or.kr)에서 유가족들에게 추모의 편지를 남기게 해 3,500여 편의 글을 모으고, 그 가운데 193편을 골라 묶은 책이다.
어느 쪽, 어느 편지고 첫 줄을 읽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눈물이 핑 돈다. 무엇보다 이 편지들이 다른 세상의 닿지 못할 사람에게 보내는 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토록 다정다감하고, 마치 내일이면 만나 손에 쥐어 줄 글인 양 가깝다.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쓴 글에선 결혼생활 30∼40년 된 부부들의 깊은 속정을 느낄 수 있다.
자식 성장하는 얘기, 집안 대소사를 일일이 전하는 글, 그리운 마음과 원망이 뒤섞인 편지 등 다양하다. 「영감 보고 싶어요. 못 지켜 드려서 정말 정말 죄송해요. 사랑해요」 「미안해. 나 혼자 이렇게 살아있어서…」 「당신이 내 마음 속에 있는 한 난 늘, 언제나 소년이라오. 당신의 향기가 그리울 때 또 오겠소」. 자식이 부모에게 올리는 글은 불효의 회환이 뼈속까지 저민다. 먼저 떠난 형제에게 보내는 글에는 새삼 우정이, 또 그리움이 새롭다. 「지금도 엄마는 밤늦은 시간에 밖에서 엘리베이터가 『땡』하는 소리가 나면 혹시 네가 아닐까 하며 문쪽을 돌아보시고 한단다. 나도 가끔 그래」.
하지만 그 어떤 글도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사연만큼 애절하지는 못하다. 「이 여름이 또 가고 가을 오고 또 계절이 가면 너를 만날 날이 가까워질 것을 기뻐하며 너의 귀한 모습들이 생각날 때마다 엄마 아빠는 이곳으로 또 오고 또 오고 할 것이란다. 보고 싶어 몸부림을 쳐보아도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우리 용하!」.
편지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죽은 자와 산 사람이 이렇게 애절하게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하는데 산 사람끼리 무슨 말인들 못할까? 겨울은 영혼으로 대화하기 위해 신이 마련한 「단순한」계절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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