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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정치권 뜬 별 진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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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정치권 뜬 별 진 별

입력
1999.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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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은 세기말이어서일까, 상승보다는 하락의 길을 걸은 정치인들이 유난히 많았다. 이 와중에도 몇몇 정치인들은 눈에 띄게 약진했다.여권에선 한광옥(韓光玉)청와대비서실장이 우뚝했다. 서울 구로을 보궐선거로 다시 뱃지를 달고도 무게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던 한실장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여권 핵심실세로 재입신했다.

새천년 민주신당의 정균환(鄭均桓)조직책선정위원장은 올 봄 사무총장직을 그만두면서 바로 총재특보단장으로 임명돼 김대통령의 각별한 신임 속에서 신당창당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상반기만 해도 권력 외곽에서 몸을 낮추고 있던 국민회의 권노갑(權魯甲)고문은 국정이 흔들리고 권력핵심의 위기감이 증폭되면서 다시 김대통령의 신임을 받게 됐다. 한광옥실장·남궁진(南宮鎭)정무수석 등의 인선에도 역할을 하는 등 동교동계의 확실한 2인자 위치를 굳히고 있다.

이밖에 민주신당 공동대표인 장영신(張英信)애경그룹회장은 여권의 차세대 여성정치인 대표주자로 화려하게 정치권에 진입했고,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은 국민신당이 국민회의에 흡수된 뒤 주변부에 머무르다 일약 집권당 총재대행으로 부상한 뒤 신당의 공동대표까지 겸임하고 있다.

야당에선 역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존재가 두드러졌다. 송파갑 재선거로 원내에 재진입한 이총재는 당안팎의 숱한 역경을 딛고 명실상부 이회창체제 구축에 성공했다. 현 구도대로 총선이 치러질 경우 그의 1인체제는 더욱 확고해 질 전망이다.

하순봉(河舜鳳)사무총장은 당내외의 엇갈리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총재의 변함없는 신임을 재확인받았다. 총재비서실장에서 총선 총장으로 수직상승한 뒤 이총재의 대여공격 대리인이자 대여협상의 이면창구라는 이중역할을 대과없이 수행하고 있다.

이부영(李富榮)총무는 이총재의 낙점하에 직선총무에 선출된 뒤 재야시절의 명성을 실물정치로 옮겨심는 실험적 성과를 거두었다. 원내 제1당의 총무직을 통해 차세대 정치인으로 도약할 수 있는 또다른 물적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 대중적으로는 별반 알려져있지 않지만 윤여준(尹汝雋)여의도연구소장은 이총재의 최측근으로 정치권 내부에서 크게 부각된 존재. 선거경험이 없는 원외면서도 총선기획단장에 임명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종찬·천용택 '實勢서 失勢로'

올 한해 내내 영일이 없다시피했던 정치스캔들에 휘말려 숱한 정객들이 상처를 입었다.

가장 수난을 겪은 자리는 국가정보원장. 정권인수위 위원장을 거쳐 초대 국정원장에 기용되는 등 제2의 정치전성기를 맞았던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는 언론문건사건으로 십자포화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주변관리, 위기수습능력 등에 문제점을 드러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에 흠집이 났다. 바통을 이어받은 천용택(千容宅)전국정원장도 재임 7개월만에 「설화」로 도중하차했다. 기자들과의 점심자리에서 『대통령이 97년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사장에게 정치자금을 수수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

「IMF 소방수」에서 「도백」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던 임창렬(林昌烈)경기지사와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도 처지는 다르지만 힘이 빠졌다. 부인 주혜란(朱惠蘭)씨와 함께 은행으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던 임지사는 확정판결까지 「시한부」 정치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정권실세로 위세가 당당했던 유지사는 서울관사 절도사건으로 구설에 올랐다. 도둑이 훔쳐간 것은 돈이었지만 정작 유지사가 잃은 것은 「명예」와 「권세」였다.

40대에 일약 청와대수석으로 발탁돼 주가를 높이던 이강래(李康來)전정무수석은 연초 난맥 정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그림자가 드리웠다. 청와대를 떠난 후 구로을 공천 내정됐다가 낙마한데 이어 언론문건 파문에도 유탄을 맞는 등 불운이 이어졌다. 김정길(金正吉)전정무수석도 부인이 연루된 옷로비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라 상처를 입었다는 평.

국민회의 총재대행들도 수난을 겪었다. 조세형(趙世衡)전대행은 서상목(徐相穆)의원 체포동의안 부결파동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이어 김영배(金令培)대행은 김종필(金鍾泌)총리의 심기를 건드린 「괘씸죄」로 교체됐다.

야당에선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핵심측근인 서상목의원의 몰락이 두드러졌다. 야당은 「방탄국회」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세풍사건의 주역인 서의원을 보호하려 애썼으나, 결국 서의원은 9월 의원직을 사퇴한 뒤 법원의 판결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밖에 선거법위반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洪準杓·한나라당)의원과 「인권법」주역인 이기문(李基文·국민회의)의원도 회한을 남기며 금배지를 반납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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