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기원이 선정, 발표한 99년도 바둑문화상 수상자 명단을 보니 흥미있는 사실이 하나가 눈에 띈다.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 이창호가 최우수기사로 뽑힌 것은 당연하다 하더라도 수훈상에 조훈현 서봉수, 감투상에 유창혁 등 이른바 4인방이 각 부문을 휩쓴 것이다. 이밖에 상금 랭킹에서도 역시 4인방이 1위부터 4위까지를 차지했다. 90년대 들어 한동안 신예기사들이 무섭게 약진, 드디어 4인방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결국 다시 10년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실제로 지난 한해는 4인방의 해였다. 국내외 기전에서 이창호의 독주가 계속되는 가운데 조훈현, 유창혁이 세계 타이틀을 하나씩 나눠 가졌고 서봉수는 국내 최대 타이틀인 LG정유배를 움켜 쥐면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에 반해 차세대 선두주자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최명훈을 비롯, 안조영 이성재 김승준 목진석 등이 번갈아 가며 정상 무대를 향해 돌진했지만 결국 한 사람도 성공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밖에 이세돌이나 최철한 조한승 원성진 등 반짝이는 재능으로 기대를 모았던 「차차세대」 신예들도 역시 지난해에 비해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
기대를 모았던 국내 신예들이 이처럼 맥을 못추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둑계 일각에서는 그 이유를 신예들의 기풍에서 찾고 있어 주목된다. 즉 신예들의 기재가 이창호를 비롯한 4인방에 비해 뒤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풍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상 정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창호를 넘어서야 하는데 신예들의 기풍이 천편일률적으로 철저한 계산바둑이라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신예들은 바둑돌을 잡을 때부터 세계 최강 이창호의 바둑을 철저히 모방하고 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1인자와 같은 초식으로 승부해서는 「영원한 2인자」밖에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창호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그의 아류가 아니라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 이창호가 조훈현의 속력행마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계산바둑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예들이 지금의 이창호를 잡으려면 이번에는 반대로 호쾌한 세력바둑이나 아니면 복잡한 싸움바둑이어야 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창호와 기풍이 흡사한 많은 신예기사들이 조훈현 유창혁에게는 곧잘 이기면서도 이창호에게는 전혀 판맛을 보지 못하는데 반해 조훈현 유창혁은 오히려 이창호와의 대결에서 뜻밖의 괴력을 발휘, 타이틀을 빼앗아 가는 것을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른바 「21세기의 바둑」을 위한 창조적 발상이 필요한 것이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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