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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기업정신의 새 지평 - 황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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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기업정신의 새 지평 - 황태연

입력
1999.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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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슘페터가 혁신적 「기업가정신(spirit of entrepreneurship)」을 개념화하고 찬양했을 당시, 진보적 성향의 거의 모든 서구 지식인들은 부르주아예찬론으로 낙인찍고 일소(一笑)에 부치는 한편, 「기업가정신」에 대항하여 근로대중의 체제비판 정신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새 천년의 길목에서 세계 진보세력들은 이전과는 반대로 이 「기업가정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진보집단이 기업가정신을 긍정하게 된 데는 두 가지 변화가 기여하였다. 첫째는 경제가 세계화와 정보혁명으로 새 아이디어와 기술이 낡은 것들을 빠르게 퇴출시키는 「고(高)리스크 경제」로 변한 것이다. 이로 인해 변화된 경제환경에서 경제의 개선과 성장, 고용 및 복지증진은 소심한 「알부자」 심리가 아니라 오로지 리스크를 무릅쓰는 창의적 도전정신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게 되었다.

이 창의적 도전정신은 상황변화에 맞서 혁신적 기획과 과감한 의지로 부단히 무언가를 도모하는 「기업정신(spirit of enterprise)」에 응결되어 있다. 이 점에서 진보집단들도 마침내 「기업정신」을 긍정하게 되었다.

둘째는 「리스크」에 대한 인식전환이다. 「위험(danger)」은 「리스크」와 다르다. 위험은 막으면 본전치기이지만, 못 막으면 위해(危害)를 입고 이 위해는 「일회적」이라서 다른 기회에 보전(補塡)할 수 없다. 이에 반해 「리스크」는 극복하면 엄청난 「성공」을 주고 극복하지 못하면 「실패」를 준다. 그러나 리스크를 여러번 무릅쓰다 한 번만 성공하여도 이전의 손실을 다 보상받고도 남는다.

또 위험은 현재적 임박성과 확실성을 띤 반면, 리스크는 미래적인 불확실성을 담고 있다. 위험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닥치는 것이지만, 리스크는 능동적으로 무언가 도모할 때만 생겨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리스크는 미래적 생산성과 창조성을 담고 있다. 이 리스크를 무릅쓰는 도전정신은 다시 「기업정신」에 응결되어 있다.

이런 이유에서 11월 서구 집권당들을 포함한 세계 좌파정당들이 모여 합의한 새천년을 위한 「파리선언」도 「기업정신」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이 선언은 기업정신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고 「연대」의 의미까지 추가하고 있다. 국가는 「이니셔티브의 재분배」로 「개인적 창의」와 「리스크 감수 의지」를 고취해야 한다. 이것들은 「남을 위해」 부와 기회를 창출해 주기 때문에 「사회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활동」에서 「기업정신」을 촉진하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연대」를 증진하는 길이고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이니셔티브와 창의가 보상받는 「새 문화」를 일으키고 「사회적 태도 및 교육·훈련체계를 혁신해야」 한다.

그리하여 가능한 한 많은 경제기업, 민간·시민운동단체 등 사회기업, 문화산업·문화예술단체 등 문화기업이 번창하여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 창의적 기업은 「남에게」 부와 기회를 준다. 따라서 「기업정신의 재분배」는 「돈벌이 개인주의」와 대립되는 「연대정신의 표출」인 것이다.

세계의 좌파정당들마저 이렇게 기업정신을 선창할진대 새천년 한국의 번영과 생산적 복지를 위한 기본전략도 기업정신의 고취를 전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선진국들의 경우 사회·문화분야에서 신규 일자리의 증가율이 경제분야에서의 증가율을 앞지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리스크를 무릅쓴 창업은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利他的)인 행위이므로 벤처정신은 사회의 전분야에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핵심적 경제부문에서 생산성 증가로 방출되는 인력을 사회·문화분야에서 수용한다. 새천년에는 기업정신의 보편화 여부가 정보기술적 생산성 향상이 만인의 번영으로 귀결되느냐, 대량실업과 불평등의 심화로 귀착되느냐를 결정할 것이다.

/황태연·동국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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