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의 벽두를 열 200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가 끝났다. IMF 한파 등의 영향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지난해보다는 응모편수가 줄어들었지만 등용문을 향한 문인지망생들의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모집공고가 나가기 전부터 응모방법을 묻는 문의가 폭주한 것은 물론이고, 마감이 지난 후에도 응모작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응모작은 소설이 420여편, 980여명이 응모한 시는 응모 편수를 3편으로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모작품 수로 따지면 줄잡아 1만여편에 달했다. 희곡과 동화, 동시 부문은 평년 수준의 응모량을 보였다.
신춘문예 작품의 내용이 바로 현실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듯이 올해의 응모작들도 우리의 사회적, 시대적 이슈들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었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특히 새 천년, 신세기를 맞는 시대적 전환점을 의식한 작품들이 많았다. 대신 지난해 IMF의 영향에 따른 실직자 문제 등을 다룬 작품들은 크게 줄어든 것도 눈에 띄었던 현상.
소설의 경우 젊은 응모자들은 사이버세계를 다룬 환상소설, 판타지소설 경향의 작품을 대거 응모한 것도 큰 특징으로 꼽혔다. 90년대 이후 한국 소설의 한 주류가 된 가족서사, 즉 가정의 해체와 붕괴를 다룬 작품들도 여전히 뚜렷한 작품경향을 이뤘다. 실버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드러낸 노인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다수였다.
특기할 것이라면 이러한 가족서사가 가족 구성원들간의 불화를 극단적으로 상징한 형태로 나타나거나, 종국에는 가족의 재결합을 희구하는 이야기 구조로 전개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여성 응모자들의 경우 가족구성원 내 주부로서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내용의 작품경향도 뚜렷했다. 소설 부문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전통적 소설문법에 충실한 교과서적인 것들과, 새로운 소설기법과 내용을 추구하는 신세대적 작품들로 크게 양별됐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평이었다.
시는 일정 수준에 오른 경우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뛰어난 응모작들이 많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의견이었다. 바늘구멍 같은 신춘문예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는 힘들지만, 낙선했더라도 문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말라는 것이 이들의 당부이다. 대신 이른바 「신춘문예용」으로 쓴듯한 모범답안 같은 작품들은 오히려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다.
에피소드들도 여전하다. 일찍 작품을 응모했다가 나중에 다시 손질해 보내면서 신문사에 내용증명을 보내 새 작품을 심사대상으로 삼아달라고 한 소설부문 응모자가 있었는가 하면, 칠언절구 수십편으로 우리 사회를 질타한 70대 응모자, 깨알같은 연필글씨로 시를 적어보낸 동심 등 노소를 가리지 않은 응모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 중국 등 해외각국에서 수많은 동포들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보내온 호응도 단연 압도적이었다. 심사 결과는 2000년 1월 1일자 한국일보에 발표된다.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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