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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사카키바라 회고록] "한국 換亂극복 행운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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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사카키바라 회고록] "한국 換亂극복 행운도 따랐다"

입력
1999.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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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키바라 에이스케( 原英資) 전 일본 대장성재무관은 24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연재중인 회고록 「국제자금의 공방」에서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에는 다른 나라와 달리 행운도 따랐다』고 밝혔다. 다음은 그가 「한국의 경제위기」라는 제목으로 쓴 97년 외환위기와 극복 과정의 요지.『한국의 경제위기는 97년 들어 조금씩 진행됐다. 급속히 늘어났던 해외자금이 1월 한보철강 도산과 2월의 기아위기를 계기로 유출로 반전했다. 조지 소로스로부터 「한국이 문제」라는 말을 들은 것은 9월22일이었다. 그때 벌써 미국과 유럽, 일본의 은행이 자금을 회수하고 있었고 9월말-11월말 은행의 대외채무가 123억달러나 줄었다. 9월말 외환준비고가 211억달러에 불과했고 11월말에는 1개월후의 자금조달 전망이 서지 않을 지경이었다. 11월초 고려대 박영철 교수가 나를 찾아와 「일본 단독으로 한국에 단기자금을 제공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전했다. 그러나 서로 앞다투어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하던 때 일본의 자금 제공 효과는 한정적이었다.

11월21일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시장이 이를 일종의 패배선언으로 받아들인데다 IMF 지원 프로그램의 신뢰도가 저하한 탓으로 원화의 하락은 오히려 가속됐다. IMF의 한국 지원책이 합의된 12월3일이후에도 원화는 1주일 사이 달러당 1,166원에서 1,533원까지 떨어졌다. 금융지원을 서둘러야할 필요성도 있었지만 구미와 일본의 민간금융기관이 한국으로부터의 자금유출을 자제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12월 중순 민간은행에의 협력요청을 두고 로렌스 서머즈 미 재무부부장관과 전화 회담을 했다. 다행히 한국 단기자금의 대부분은 은행, 그것도 G7과 수개국의 은행이 채권자였다.

나와 서머즈 부장관의 친구로서 중남미 경제위기 때부터 채무문제 전문가인 미 시티뱅크의 빌 로즈 부회장의 협력을 얻어 12월 중순부터 G7과 전화회담을 수없이 열었다. 그 결과 민간은행의 상환연기, IMF와 세계은행의 조기 지원 등이 결정됐다. 파산의 위기에 몰렸던 한국 정부와 IMF·G7간에 민간채권은행을 포함한 지원틀이 최종적으로 합의된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24일이었다.

한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은 97년 이래 일련의 위기 가운데 획기적인 것이었다. 기업이 깊이 관여했던 인도네시아나 투자기금의 비율이 높았던 브라질과 달리 한국은 주요 채권자가 은행이었다는 점, 시티뱅크의 로즈 부회장이나 뉴욕의 맥 워커 변호사 등 80년대 중남미 위기 때부터 솜씨를 닦아온 전문가가 적절히 협력했다는 점 등은 다른 나라가 누리지 못한 행운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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