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적어도 겉모습은 그렇다. 꿈이라고 여겼던 시장점유율 40%(업계 추산)를 달성했다. 그것도 외화(220여편)의 20%에 불과한 41편으로. 더구나 한꺼번에 불어닥친 스크린쿼터 폐지 위기, 대기업 자본의 철수,영화정책부재와 영화인들의 내분이란 악재 속에서 이뤄낸 결실이었다.그 조짐은 새해 첫날부터 보였다. 정우성·이정재의 「태양은 없다」(서울 33만명, 이하 영진위 자료)가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의 「유브 갓 메일」(19만명)을 눌러 버리는 기분좋은 출발. 이어 「쉬리」(245만명)가 「타이타닉」을 침몰시켰다. 중요한 것은 기록이 아니었다. 「쉬리」는 할리우드 오락장르와 테코놀로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다.
감독도, 관객도 바뀌었다. 영상세대인 이들은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보다는 느낌이나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고 관람했다. 코믹극 「주유소 습격사건」(95만명, 2위)이 이른바 「묻지마 영화」로 대사건이 된 것도, 하드고어 스릴러를 표방한 「텔미 썸 딩」(70만명, 3위)이 논쟁거리가 된 것도, 내러티브가 엉성한 액션 코미디 「인정사정 볼 것 없다」(68만명, 4위)가 과대포장된 것도, 드라마가 취약한 SF영화 「용가리」(50만명, 5위)의 테크놀로지에 박수를 보낸 것도, 모두 이런 변화의 반영이었다.
위기감은 다양한 소재발굴과 부족하지만 세심한 마무리, 관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치밀한 기획, 예술보다는 상업성 절대우선의 제작관행을 낳았다. 배급력의 집중과 확대도 큰 몫을 했다. 한 작품을 전국 100여개 상영관에 거는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대표의 존재. 올해 한국영화의 30% 가까이가 그의 손을 거쳐 나갔다. 「미이라」(126만명)나 「매트릭스」(89만명)를 제외하고는 돌파구를 못찾고 헤매는 할리우드의 반사 이익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나타난 부작용들, 즉 작가주의와 리얼리즘의 실종, 기본을 저버린 멋과 스타일, 예술영화 몰락과 영화제 이상열기, 배급독점과 스타시스템의 집착은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했다. 『관객들의 애국심, 노력과 도전에 대한 너그러운 태도도 한 두번일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 신·구 영화인들의 대립은 21세기 영화정책의 산실인 영화진흥위를 불구로 만들었고, 젊은 영화인들은 「영화인 회의」를 만들어 따로 논다. 해보고 고치면 되고, 문화보다는 경제 우선인 정부의 발상이 영화인들을 흔들었고, 성인전용관 설치문제, 「거짓말」의 등급보류란 속앓이도 있었다. 그래서 한국영화는 올해 분명 잔치를 맞았지만 섣불리 삼페인을 터뜨릴 수는 없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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