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굿바이20 버릴 것 이을 것](8)시민의식의 부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굿바이20 버릴 것 이을 것](8)시민의식의 부재

입력
1999.12.24 00:00
0 0

■버릴것 이을것 (8)시민의식의 부재뉴밀레니엄시대의 한국은 경제적 풍요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사회저층을 흐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탄탄하게 받쳐 줘야한다. 그러나 천년의 세밑에서 돌아본 현실에는 『아직 멀었다』는 자조(自潮)가 짙다.

편가르기가 횡행하면서 「왕따」들을 양산하고 판을 치는 「적당주의」로 안전사고들이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다. IMF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도덕적 해이에 편승해 사회기강을 위협하는 악습들까지 기승을 부린다.

새천년을 눈앞에 둔 지금, 우리 시민의식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쯤일까.

* 무질서와 혼란

일본인 이케하라 마모루(池原衛·64)씨가 지난 해 연말 던진 화두는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에서 이케하라씨는 아파트 아래층까지 들리도록 뛰어노는 어린이들, 식당이든 지하철이든 비행기안에서까지 그칠새 없이 이어지는 휴대폰소리 등 우리사회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을 적시했다.

질서의식을 가늠하는 잣대는 얼마든지 있다. 10월말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7차전 당시 벌어진 관중난동 사태는 과연 2002년 월드컵 개최지 시민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인지 되묻게 했다. 홈팀의 패배에 흥분한 관중 1,000여명은 응원깃발을 불태우고 상대방 응원단의 차량과 경찰 순찰차량을 부쉈다.

질서의식을 확산하기위한 운동이 계속되고있지만 성과는 아직 미지수다. 월드컵문화시민운동협의회(회장 이영덕·李榮德)가 3월부터 벌이고 있는「에스컬레이터 제대로 타기」캠페인의 경우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바쁜 사람들을 위해 왼쪽을 비워두자는 취지로 시작됐지만 백화점, 지하철에서 남을 위해 한켠으로 비켜 선 시민들을 보기는 어렵다.

* 교통질서부재

10월 29일 오전 서울 강남일대 도로에는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출근전쟁」의 배경은 간단했다. 전날 악천후로 인해 교차로의 신호등 일부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출근길 상당수의 차량들이 교통경찰관의 수신호마저 무시한 채 조금 앞서가려다 교차로에서 멈춰서는 바람에 주요 간선도로는 물론 골목길까지 강남일대는 온통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외국인들은 시민의식가운데 가장 큰 문제로 「일그러진 교통문화」를 꼽는데 서슴지 않는다. 서울시가 최근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외국인 52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이 살기 나쁜 이유중 첫번째는 「교통문제」였으며 외국인들은 도로혼잡과 주차문제 다음으로 교통질서의식의 부족을 개탄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음주운전도 우리가 교통질서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보여준다. 한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람의 수만 30여만명, 교통사고 2만3,000건에 1,000명 사망, 4만여명 부상.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국민총생산(GNP)의 7.2%인 약30조 361억원에 이른다.

* 패거리주의

우리사회에서 영원히 깨지지않는 3개의 집단이 있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 「00전우회」 「00대 동창회」 「00향우회」가 바로 그 말이다.이 농담속에 진실이 숨어있다. 지연과 학연에 따른 울타리를 쳐두고 편을 가르는 패거리주의를 희화화한 말인 셈이다. 인사철만 되면 줄대기 나눠먹기 봐주기등의 논란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인맥에 의해 위에서 끌어주고 밑에서 밀어주는 연고주의의 풍토에서 능력중심의 공정한 경쟁의 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인정을 중시하는 정(情)의 문화』라고 자위하기도 하지만 패거리주의의 지역감정을 이용해 선거를 치르고 학연 혈연을 이용해 잇속을 차리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있다.

패거리주의는 집단이기주의라는 다른 얼굴로 나타나기도 한다. 님비와 핌피라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주민과 지자체간의 갈등은 도청소재지의 선정, 통합, 시군의 명칭선정, 쓰레기 매립장, 쓰레기 소각장, 핵폐기물처리장건설 등에 까지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으며 그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연세대 유석춘(柳錫春·사회학)교수는『혈연과 지연에 크게 지배당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집단이기주의로 연결되는 측면이 강하다』며『서구적 기준에서 우리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매도하기 보다는 이런 특성을 좋은 방향으로 살려나갈 방향을 모색할 때 집단이기주의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배금주의

IMF초기 금모으기로 반짝했던 우리의 시민의식은「돈바람」속에 빛이 바래가고있다. 주식투자열풍, 세기말의 흥청망청 풍조에 휩쓸려 돈만을 최고로 여기는 천박한 「배금주의」가 사회를 다시 휘감고 있다.

최근 경기가 살아나면서 우리 사회를 IMF위기로 몰아넣은 사치풍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8월부터 특급호텔의 호화결혼식에 대한 빗장이 풀리면서 서울시내 유명호텔은 연일 결혼식을 치르는 사람들로 초만원 사태를 빚는다. 들뜬 연말분위기와 어울려 연말 서울시내 대형음식점과 룸싸롱들은 연일 망년회, 회식 등으로 자리가 없을 지경이다. 강남의 잘나간다는 J나이트클럽은 연일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뤄 2시간 이상 기다려야만 자리가 날 정도이다.

배금주의의 그늘은 사회를 더욱 각박하게 만든다. 세밑 양로원과 고아원 등 주변을 돌보는 손길은 더욱 줄어들었다. M보육원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개인들이 보육원을 찾아와 조그만 정성이라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개인보다는 단체에서 성금액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며『경기가 되살아 나고있다지만 인심은 나아지지 않는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재열기자

desper@hk.co.kr

■[굿바이20] '서울올림픽 홀짝운행' 'IMF 금모으기'

시민의식의 부재를 해결할 방법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라는 도약의 계기와 97년 IMF라는 국난을 맞아 우리 국민이 보여주었던 시민의식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 남은 희망을 엿보게 한다.

88 서울올림픽 당시 서울로 몰려든 외국인들의 눈에 각인 된 것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보다는 물밀듯 몰려든 자원봉사와 외국인에 대한 친절 등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이었다. 완벽에 가까운 자가용 격일제 운행, 경기장에서의 관전매너와 질서의식은 우리 민족사에 한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까지 들었다. 대회 개막전까지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했던 승용차 짝·홀수운행제는 시합첫날 24만8,000여대중 위반차량은 300여대에 불과했으며 올림픽 기간 중 참여율은 94%나 됐다. 당시 위반자에게 벌금을 물리는 계획을 세우다 이를 철회한 관료들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였다.

97년 IMF사태를 맞았을 당시에도 온국민은 하나가 되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까지 금붙이 하나를 들고 은행창구로 몰려드는 열기에 힘입어 우리의 수출은 98년도 200억달러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금모으기운동」은 그 실효성을 떠나 국난을 맞아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저력을 보여준 단적인 예인 셈이다. 월드컵문화시민중앙협의회 안석봉(安碩鳳)홍보부장은 『88올림픽때 우리국민이 보여준 높은 질서의식이 계속 이어지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며『2002년 월드컵을 얼마 안 남겨놓은 지금 걱정들을 많이 하지만 우리 시민의 질서의식은 분명 또하나의 전설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경기자

moore@hk.co.kr

■[기고] 김지길(金知吉) 공동체의식개혁국민운동협의회 상임공동의장

우리 국민이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선 시민 개개인의 자기개혁이 급선무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옷로비사건 등 잇단 부정부패 스캔들로 매우 혼란스런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정치권에 대해 극도의 불신감을 보이고 부패구조를 탓하곤 하지만 사실 이런 부패구조가 청산되지 않고있는 것도 어찌보면 시민들의 의식개혁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벗어버려야 할 것은 부정부패를 탓하면서도 정작 스스로 지켜야 할 자신의 소신을 잊어버리고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중성」에 있다. 우리는 과연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성숙한 시민으로 생활하고 있는 지 반성해야 한다. 공중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지역감정, 연고주의의 족쇄에 묶여있는 시민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시민들이 우리 사회의 구조를 탓하고 부정부패를 비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회개혁과 민족개혁은 시민 개개인의 자기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벌이고있는 공동체의식개혁운동은 자기개혁에서 시작, 사회개혁을 이루자는 취지의 운동이며 그 근본원리는 인간존엄성을 중시하는 기초적 전제에서 정의와 화해, 평화를 이뤄 공동체정신을 앙양하는 데에 있다.

새천년에는 진실과 정의가 존재하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의 자기개혁이 필요하다. 지역,연고에 얽매이는 사람, 공중도덕 지키는 데에 인색한 사람, 남을 탓하며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는 사람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보다 깨끗한 사회, 성숙한 사회, 살기좋은 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기고] 켈리 맥러플린 경희대 국제교육원 교수

우선 나는 한국시민들이 한국만의 고유한 전통속에 가져온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문화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던 웃어른에 대한 공경만 봐도 그렇다. 어느날 나는 여고생들로 가득찬 버스를 탄 적이 있다. 그때 80세정도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버스에 올라타셨는데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결국 버스안에 있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내가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하고 말았다. 자리를 양보했지만 내 마음은 결코 유쾌하지 못했다. 한국에 오기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이 「웃어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이었던 나로서는 이런 풍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국을「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부르기는 이젠 어렵다고 생각한다. 미국인들은 길을 가다 조금만 옷깃이 스쳐도 『Excuse me』를 외치지만 한국 시민들은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인 지 『미안합니다』한마디 하는데에 너무나 인색하다. 공중장소 어느곳에서나 휴대폰을 사용하며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누구하나 그런 것들에 대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인 지 아닌 지를 생각해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물론 이런 것들로 한국인의 시민의식이 「낮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외국인의 기준과 한국인의 기준이 다르고 그 이면까지 들여다보는 능력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한국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현재 말하는「시민의식」이라는 것과 한국인이 오랜 역사속에 갖고 있었던 훌륭한 문화유산을 잘 접목시키라는 것이다. 정과 웃어른에 대한 존경, 품앗이, 두레등의 전통에서 보여준 한국인들 만의 「시민의식」을 복고시키라는 것이다.「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지혜가 새천년 한국인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는데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