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가 좋았어요?』 하는 질문이 연말이 되면 『올 한해 가장 좋았던 영화는 뭐예요』로 상향조정된다. 연령, 동반자, 심정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므로 영화에 등수를 매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 여기면서도, 영화 목록을 훑게된다.특수 효과나 완급 조절 없이 밀어붙이는 액션을 자랑하는 물량 위주 영화는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말끔히 잊어버려 목록에 오르지 못한다.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진솔한 이야기를 적은 돈으로 깔끔하게 영상화한 영화들이 오래 망막에 남아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젊은 나이, 사랑도 미래도 불명확하니 방황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들이 부럽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 앞에 있기 때문이다. 배우 출신인 젊은 감독 에드워드 번즈는 「맥멀랜가의 형제들」 「그녀를 위하여」에 이어 「치즈 케익과 블랙 커피(No Looking Back)」(18세이상·폭스)를 내놓았다. 남자 형제들을 주인공으로 한 앞의 두 작품과 달리 「치즈…」는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바람 같은 첫사랑(에드워드 번즈)과 현재의 성실한 동거남(존 본조비)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여성(로렌 홀리)의 심정을 아기자기하게 그린다. 부모 세대의 어긋난 사랑, 바닷가 마을의 회색 풍광이 무드를 더해준다.
제임스 토바크의 「투 걸즈(Two Girls and a Guy)」(18세이상·베어)는 두 여자(나타샤 그렉슨 와그너, 헤더 그래함)를 감쪽같이 속여온 재주 많은 노총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내면을 연극 대사, 피아노 연주, 노래 등으로 묘사한 실내극. 한정된 공간과 세 명의 배우만으로 사랑의 삼각 관계를 심도있게 파헤친 신랄한 영화.
「조지왕의 광기」 「크루서블」과 같은 시대극으로 이름을 높인 영국 출신 니콜라스 하이트너는 뜻밖에도 현대 젊은이들의 얽히고 설킨 감정을 즐겁게 따라간다. 동성애와 이성애자를 생활인으로 잘 묘사한 「내가 사랑한 사람 (Object of My Affection)」(18세이상·폭스)이 그것이다. 빨강머리 앤이 성장하면 이런 사랑을 하지 않을까 싶은 「프리 섹스(Some Girls)」(18세이상·시네마트), 작은 커피숍을 무대로 한 「잠들 수 없는 밤(Dream for an Insomniac)」(18세, 콜럼비아)도 놓치기 아까운 상큼한 젊은 사랑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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