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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가정을 포기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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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가정을 포기하면 안된다

입력
199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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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중·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본인은 회사의 경영혁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솔선수범하고 이를 위해 99년 11월 22일부터 2000년 5월 21일까지 가정을 포기할 것을 맹세한다」 충북 청주의 한 중소업체 직원들이 경영혁신 운동을 벌이면서 가정포기 각서에 배우자의 도장까지 받고 「경영혁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는 사직한다」는 사직서를 함께 제출했다는 신문 기사였다.

짤막한 기사에 담지 못한 속 얘기를 다 알 수 없어 대뜸 그 회사를 비난할 수는 없었지만 누구를 위한 경영혁신이고 무엇을 위한 가정포기인지, 그리고 그런 생각과 몸부림으로 과연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작지 않은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기업을 경영해 보아, 전쟁으로 비유하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경영자의 고통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직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 강압적인 가정포기 각서가 어떤 부작용과 후유증을 몰고 올지를 따져보고 고민하며 보다 신중을 기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남자는 일, 여자는 집안 살림이라는 이분법적인 성 역할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가정의 형태, 가족의 기능, 그리고 가족의 역할도 많이 달라졌다. 심지어는 가정의 붕괴나 가족 제도의 종말까지 예고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 길의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싣는 거대한 사람들의 무리를 보라.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잃지 않고 지켜야할 가치는 가정이요, 가족의 사랑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입버릇처럼 되뇌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가 아니라 나부터 실천하며 만들어 나가는, 건강한 가족문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물론 세상 살아가는데 가정만 중요하고 가족만 소중한 것은 아니다. 부와 가난이 세습되고 여성과 자식들을 무조건 억압했던 가족제도는 반사회적이라는 얘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가족이기주의나 지나친 가정중심주의는 건강한 이웃문화로 승화시켜야 한다.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주식투자나 부동산 투기 기사를 보면 이런 때일수록 더욱 가치있는 것이 가정에 대한 투자가 아닌가 한다. 일시적인 성장을 위해 가정이 희생되고 가족이 해체되면 각종 문제가 잇따르고 그런 사회적인 문제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으로도 해결이 어렵다. 그러기에 임시방편식 문제수습이 아니라 예방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포근한 보금자리로서의 가정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바라지만 말고 가족의 한 사람인 내가 우리 가정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해야한다. 물주고 거름 주고 정성들여 가꿀 때만 가정은 사랑과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보답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양적인 성장에만 매달려 온 결과가 무엇이었나를 우리는 뼈저리게 겪었다. 물의를 빚은 그 회사도 이제,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직원들의 가정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연구하며 일과 가정의 균형을 챙겨야 할 때다. 그리고 결혼이란 무엇이며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가

정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 공부해야 한다. 「경영」하면 흔히 기업을 떠올리지만 가정도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경영대상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일 주일 밖에 안 남았다. 밀레니엄이다, 새천년이다 야단들이지만 내가 당장 오늘 할 수 있는 일부터 챙기자. 마지막 한 주일, 번잡한 망년회와 송년회는 생략하고 지나온 천 년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보내며 12월 31일, 정성들여 만든 저녁을 함께 나누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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