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마감하는 한 해가 다 지나고 있다. 어느 구석 하나 잠잠하지 않은 한 해였다. 씨랜드,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와 같은 끔찍한 일도 많았고 옷로비 의혹사건 등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도 한 둘이 아니었으며, 정치권을 되돌아 보면 답답하고 분하기가 그지 없는 일도 적지 않았다.특히 실직의 고통을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가정에서는 평생을 잘못 살아온 것같고 속아 산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지내온 한 해 였다고 넋두리 할 정도로 IMF의 후유증은 골이 깊다. 열심히 직장에 다니면서 소박한 꿈을 키워 오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내팽겨진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한두 명이 아니다.
외환위기를 벗어났다는 정부의 발표는 잇달았지만 실업률은 외환위기 직전보다 2, 3배나 높은 100만명선을 상회하고 있다. IMF 한파가 「못 가진 계층」에 집중됨으로써 중산층이 붕괴되는 등 소득불균형이 심화했다.
한국의 도시빈민이 지난 한 해 동안 전년에 비해 두 배이상 늘었다는 세계은행의 최근 발표는 IMF 이후 빈곤의 실상과 소득분배의 악화를 말해 준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중산층의 점유율이 70%에서 최근에는 43.6%로 떨어져 중산층의 폭이 크게 엷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개발원(KDI)은 최근의 소득분배구조의 악화는 98년의 급격한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경기회복이 본격화하면 점차 개선될 것으로 낙관적인 진단을 하고 있는가 하면 정부당국 또한 유사한 시각으로 대응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생산적 복지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게 될 경우 IMF 경제위기 이전보다는 더 나은 분배구조로 복귀하게 될 것으로 희망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어 현실을 외면한 탁상정책대응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정부도 대규모의 예산투입을 통하여 외환위기로 인해 늘어난 실업문제 해결에 진력해 왔으며 중산층 및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시행(2000년 10월)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적 복지정책을 통한 소득재분배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시책으로서 깊어질대로 깊어진 체감불평등을 해소하기에는 크게 미흡하다는 점이다.
분배구조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데는 일시적인 소득이전책이나 세제감면 등으로는 그 효과가 한시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과 실업대책이 그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급히 서둘러서 해결될 과제가 결코 아니며 중·장기적으로 실업자구제를 위한 투자증대방안 및 산업구조조정정책이 치밀하게 계획되고 내실있는 실천이 함께 해야할 것이며 세입·세출측면의 제도개혁, 이에 부응하는 국민의 의식변화 등 범국민적인 지속적 노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
올해 일부 기업의 이윤이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기업도 기술혁신에 투자하고 난 이후 여유자금을 사회환원 차원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투자에 돌린다면 국민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기업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인간이 진정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편 중의 하나가 나누어 가지면서 더불어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빈곤층을 지원하는 NGO나 비영리단체의 기부와 자선행위를 범국가적으로 독려하고 제도화하는 일도 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임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역사의 여울을 흘러, 한 세기의 고비를 넘어 새 천년을 맞는 이 언덕에서 끔찍하고, 어처구니없고, 분하기 그지없는 일들일랑 살라 버리자. 그리고 바로 그 잿더미에서 넉넉하고 떳떳하고 당당한, 더불어 함께 하는 사회에 관한 지혜로운 이야기를 마련하면서 우리 모두는 새 천년을 맞이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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