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시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23일로 예정된 생존권 쟁취를 위한 태백시민 총궐기대회를 앞두고 거리에는 「절망의 아픔보다 죽음을 달라」는 등 섬뜩한 플래카드들이 빽빽이 내걸렸고, 상가마다 집집마다 붉은 깃발이 나부낀다. 택시와 승용차들이 대낮에도 전조등을 켠채 달리고, 길가에는 시위용 연탄이 쌓여있다.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란 이름으로 탄광문을 닫기 시작한 지 10년이 넘도록 실직자 대책을 외면해온 정부에 대한 항의다.연례행사처럼 대규모 시민집회와 상경시위가 반복되는 가운데 12일 시민 1만여명이 모여 1차 궐기대회를 열었고, 연일 농성과 단식투쟁으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정부의 반응이 미온적이라고 판단한 시민들은 관심을 끌기위해 과격한 시위방법을 택할 것이라 한다. 모든 상가가 철시하고 인근지역으로 통하는 5개 도로를 봉쇄하며 철로를 점거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1,000여명의 통·반장들이 모두 사표를 낸데 호응해 시민들은 주민등록증 반납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시장과 시의회 의장 등의 삭발에 이어 2,000여명의 시민들이 머리칼을 잘라 모아 산업자원부에 보내자는 계획도 있다.
태백시민들이 이렇게 성이 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부가 문닫은 탄광 종사자 구제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시민 전체가 심각한 생계위협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연료 소비패턴이 주유종탄(主油從炭)으로 바뀌어 석탄수요가 격감하기 시작한 88년이후 탄광문이 닫히기 시작해 이 지역 45개 탄광이 지금은 3개로 줄어들었다. 한 때 13만명이던 인구가 5만7,000여명으로 줄어든 것만 보아도 이 도시가 얼마나 급속히 피폐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태백시와 인접 정선군 등을 개발촉진지역으로 지정해 대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과, 95년 사북·고한 주민들의 과격시위 사태 수습을 위한 탄광지역 종합진흥대책 수립이었다. 그러나 이 대책들도 카지노 산업과 고원관광산업 개발을 위한 민자유치 위주의 방식이어서 성과는 부진하다. 다급해진 시민들은 우선 채산성이 있는 탄광문을 다시 열어 일을 하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정부는 석탄산업법 규정을 이유로 난색을 표한다. 이러다가는 제2의 사북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사양산업인 석탄산업 종사자 처리는 모든 나라들이 겪고 있는 난제다. 그러나 영국 독일 일본 등은 20~30년 계획을 세워 공단 조성, 공기업 설립 등의 방법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자를 수용하고 있다. 한 도시 주민 전체의 절박한 생존권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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