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을 침몰시킨 강제규전국 관객 578만명. 올해 전체 관객의 4분의 1. 해외수출을 제외하고도 수입340억원. 설날 항해를 시작한 토종물고기 「쉬리」는 거대한 「타이타닉」을 정복했고, 그 열풍은 한국영화 사상 유례없는 호황의 서곡이었다. 강제규(37) 감독에 의해 한국영화는 비로소 블록버스터 시대를 열었다. 그의 도전은 할리우드의 테크놀로지와 오락이 실현불가능한 꿈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고, 한국영화는 비로소 투자해 볼만한 「산업」이 됐다.
■ 흥행공주 전도연
전도연(26)은 잘난 척하지 않는다. 스스로 예쁘다기 보다는 「정다운 들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봄에 늦깎이 초등학교생(「내 마음의 풍금」)이던 그가 겨울에 바람난 아내(「해피 엔드」)가 돼도 어색하지 않다. 「접속」(97년)으로 시작해 불과 4편. 그것으로 그는 「한국 최고의 흥행공주」가 됐다. 「약속」으로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수상. 그리고 가장 인기있을 때 화끈하게 벗었다.
■ 뮤직비디오의 왕자, 조성모
처음엔 그저 한번이려니 했다. 1집 「To Heaven」의 성공으로도 가요계는 충분히 놀랐는데, 2집 「슬픈 영혼식」은 올해 최고의 화제가 됐다. 판매량 200만장을 육박(11월말 현재 180만장)하며 96년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이후 두번째 최고 판매량을 기록. 화려한 스타와 극적 구성을 도입한 뮤직비디오, 천진한 귀공자로서의 이미지, 귀에 쏙 들어오는 멜로디. 조성모( )의 성공은 귀가 아닌 몸으로 음악을 듣는 신세대 정서의 상징이었다.
■ H.O.T보다 바쁜 H.O.T 팬클럽
공연중 문희준이 쓰러지자 팬중 200명이 졸도. 문희준과 교제설이 나돌던 그룹 베이비복스의 여성 멤버에게 협박편지. 그러나 이런 일과 H.O.T 팬클럽을 굳이 연결시킨다면 청소년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아니다. 정식 회원만 3만 5,000명. 이들은 H.O.T나 팬클럽에 해를 끼치는 방송사에 10만명 서명지를 보냈다. 팬클럽은 단순한 오빠 부대가 아닌 유력한 압력집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팬덤 시대」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 전사회적 관음증, 오현경
O양이라 불리워졌지만 모든 사람들이 탤런트 오현경(29)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디오 테이프는 「단군시대 이래 가장 빨리」 유포됐다. 그 적나라한 장면을 보기 위해 50만명이 인터넷에 가입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점잖은 국무회의 의제로도 올랐다. 이른바 「몰카」의 시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사회적인 관음증을 배경으로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대스캔들이었다.
■성논쟁, 서갑숙
또 한 사람의 연예인이 섹스라는 화두로 파장을 일으켰다. 대담한 성체험 고백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10월초 나오면서 내용에 상관없이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검찰의 음란성 여부 조사방침은 서갑숙(38)의 성체험 고백서가 성담론의 공개화냐, 상업적인 술수냐는 논쟁을 야기시켰다. 서씨 개인에게도 찬사와 비난이 엇갈렸다. 올해 대중문화의 거대한 담론으로 떠오른 성의 공론화에 서씨는 마지막 불씨를 지폈다.
■심현섭과 「개그콘서트」
올 7월 첫 선을 보인 후 불과 몇달 만에 놀라운 웃음바람을 몰고왔다. 버라이어티쇼·토크쇼에 밀려 본격 코미디 프로가 부진을 면치 못하던 상황에서 KBS2 「개그콘서트」는 공연식 개그라는 새로운 코미디 흐름을 만들었다. 또새 얼굴에 목말랐던 개그계의 갈증을 적시며 심현섭, 백재현, 김영철 등이 차세대 웃음폭격기로 등장했다. 특히 「사바나의 추장」 심현섭( )의 지칠 줄 모르는 입심.
■노자와 21세기, 김용옥
철학박사 김용옥(52)이 가는 곳에 뉴스가 있다. 11월 22일부터 EBS를 통해 방송하고 있는 「노자와 21세기」 강좌는 해박하고 장광한 지식, 거침없는 어투, 그리고 재미로 EBS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고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김씨는 노자를 반주지주의적, 반남성적, 생태주의적으로 재해석해 21세기의 상황에 대응하자는 논리를 펴 특히 여성 시청자의 폭발적 관심을 끌고 있다.
■프로게이머의 빛과 그늘, 「쌈장」
올해는 3S의 시대였다. Sex, Stock, Starcraft. 이런 열풍 속에서 「프로 게이머」란 신종 직업이 등장, 각광을 받았다. 광고까지 출연한 스타크래프트 세계대회 챔피언 「쌈장」 이기석(20)은 새로운 게임세대의 영웅이자 상징이었다. 하지만 승부조작을 통해 예선을 통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과도한 승부욕, 폐쇄주의, 떼거리주의 등 인터넷·게임 세대의 일면이 도마에 올랐다.
■위작의 대가, 권춘식
올해 미술계를 뒤흔든 사람은 엉뚱하게도 화가가 아니다. 청전 이상범의 「추경산수화」를 위조, 판매한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 권춘식(52)씨. 미술평론가들이 「청전보다 낫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교묘한 솜씨를 지닌 그는 천경자의 「미인도」까지 그렸다고 주장했으나 진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나는 설치한다, 이 불
3년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썩어가는 생선을 전시했다가 작품을 철거당하는 수모를 겪었던 설치 작가 이 불(35)씨. 6월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수상작은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 아마추어」라는 제목의 노래방 캡슐. 88년과 98년 단 두차례 국내에서 개인전을 가졌을 뿐이지만, 대중문화를 바탕으로 한 충격적인 일련의 설치 작업들로 일약 한국의 대표적 여성작가로 떠올랐다.
■발레의 여왕, 강수진
발레리나 강수진(32·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은 올해 4월 세계 발레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매년 최고의 무용가에게 주어지는 「브누아 드 라 당스」상에서 엘리자베스 플라텔과 함께 최고 여성무용수로 선정된 것이다. 그는 9월 서울 부산 광주에서 모두 네 차례 열린 한국 발레스타 갈라공연에 참가, 잊지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정부는 그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했다. 빼어난 미모로 페라가모 구두 모델로도 나섰다.
■얼굴있는 시인, 박노해
얼굴 없는 노동자시인이었던 박노해(42)씨는 출감 후 「운동」에 대한 자신의 변화된 생각과 모습을 활발하게 대중 앞에 드러내 관심을 모았다. 그는 감옥을 나서면서 「이기는 싸움, 돈되는 운동, 즐거운 운동」을 하겠다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고 밝혔다. 그 모델로 가수 H.O.T를 들기도 한 그를 놓고 변화냐 변절이냐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한 페미니즘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서갑숙을 옹호했다.
■율려운동, 김지하
김지하(58)씨는 혼란에 빠진 서구중심 현대문명의 대안으로 아시아 고대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율려운동을 펼치면서 논쟁과 테러위협의 대상이 됐다. 학계, 특히 소장학자들은 김씨의 율려운동이 문화엘리트 사상이자 쇼비니즘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또 단학선원과의 결별을 선언한 뒤 테러위협을 받고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기도 했다. 21세기를 보내며 어두운 「지하」라는 이름을 버리고 본명인 영일(英一)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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