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정책에 「노선(路線)수정」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지난 2년간 행정·사법적 수단까지 동원하며 지속되어온 「매파(강경론)」적 접근은 연말을 계기로 점차 연성(軟性)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21일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주재로 열린 기업·금융기관 대표 오찬간담회는 이런 기조변화의 맥락에서 이해된다. 사실 대통령과 재벌총수가 자리를 함께 하는 정부·재계 간담회는 98년 1월13일 첫 모임이래 지금까지 항상 개혁에 미온적인 재벌들에 대해 질책을 가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는 채찍 대신 구조조정 노고를 치하·격려하기 위한 모임이었고, 따라서 정부의 재벌다루기 방식에 변화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강봉균(康奉均) 재정경제부장관은 이와 관련, 『정부 주도의 재벌개혁은 올해말로 마무리짓고 앞으로는 금융감독기능을 통한 간접통제 방식으로 재벌개혁을 추진하겠다』며 향후 재벌정책방향으로 「기업-금융기관간 자율개혁론」을 제시했다.
이는 부채비율 200% 달성, 7개 중복투자업종 빅딜 등 주요 목표들이 금년말 마무리되는 것을 계기로 삼아 국민의 정부 재벌개혁 1단원은 마무리짓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2기 개혁은 정부는 가급적 뒤로 빠진 채 금융기관이 기업구조조정을 이끄는 「교과서적 방식」으로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빅딜이나 부채비율같은 수치목표와 시한을 제시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같은 배경에는 「선거를 앞두고 적을 만들지 않겠다」는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자율개혁」으로 과연 재벌개혁이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데 있다. 재벌체제의 근본적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전면에 나서도 뜯어고치지 못한 재벌의 폐해를 과연 「자율」로 해소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은행권의 한 고위인사는 『현재의 금융기관 능력이나 자세론 절대로 재벌개혁을 주도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따라서 섣부른 「자율개혁론」은 자칫 개혁의 중단, 개혁의 포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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