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속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확정한 개혁안은 「민주사법」을 표방한 여러가지 개선방안을 담고 있다. 사법제도의 틀을 바꾸는 발본개혁을 요구해온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의 안목에서 보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인권보호와 권리구제 측면에서 진전된 제안이 많다.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현실적 제약과 이해관계에 얽매여 타협적·소극적 방안들에 머문 느낌이다. 수사기관과 법원 등의 관행개선과 노력만으로 가능한 인신구속제도와 수사·재판절차 등에는 뚜렷한 개선방안을 제시한 반면, 국가기관의 권한과 법조직역의 이해, 예산문제 등이 얽힌 사안은 손대지 않거나 소극적 개선책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이에따라 사법제도의 질적 변화를 가져올 개혁안이라기 보다는 실무개선안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진정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 어려운 과제임을 새삼 확인케 한다.
그나마 평가할 부분은 신체의 자유와 신속한 권리구제를 보장하는데 역점을 둔 것이다. 피의자 긴급체포후 지체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도록 한 것과 경찰 구속기간을 10일에서 5일로 단축한 것, 보석사유를 확대한 것, 피의자 조사시 변호인 참여권을 인정한 것 등이다. 공무원 직권남용과 독직폭행에 국한된 재정신청 범위를 고위공직자의 모든 범죄로 확대한 것도 검찰의 기소독점권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는데 도움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국민적 원성과 개혁요구가 집중된 법률서비스 확대와 검찰개혁, 시민의 사법참여 등에서는 뚜렷한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법률구조와 변호사단체의 공익활동을 늘리고 형사사건 국선변호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제시됐으나, 모든 국민이 쉽게 질좋은 법률서비스를 받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변호사 보수와 수임비리등 법조비리 척결에도 획기적 개혁안은 없다. 이에비해 법학교수에게 변호사 자격을 부여하기로 한 것 등은 법률소비자인 국민을 생각하기보다는 법률전문가들의 이익조정에 신경쓴 듯한 의심이 든다.
특히 검찰권 독립을 위한 개혁이 검찰인사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하는 정도에 그친 것은 법조인 양성제도 개선문제와 함께 심각한 논란을 부를 것이다. 검찰동일체 원칙 폐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상설 특검제 도입, 사법시험 정원제 폐지, 로스쿨 설치 등 학계나 시민사회단체의 다양한 요구가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관제사법」의 기본틀을 바꾸라는 시민사회의 요구가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을 생각하면, 개혁안은 갈등을 풀기보다는 더할 것으로 우려된다. 개혁안을 최종안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진정 국민을 위하는 사법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의 출발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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