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대통령과 경제계 인사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보면서 우리는 며칠 앞으로 다가온 내년 일을 걱정하게 된다.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온 기업인과 금융기관장들을 격려하기 위한 이날 간담회는 사실상 IMF체제 2년을 결산하고 다음 연도의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그간의 개혁실적과 올해 경제성과를 짚어보면, 이날 간담회에서 정책당국자들이 보고한 대로 적어도 기업과 금융부문 특히 외형적인 수치에서만큼은 평가를 받을 만 한 것이 사실이다. 4대 그룹의 부채비율이 연말까지 200%이하로 낮춰지는 것을 비롯해 대기업들의 재무구조개선 이행률이 목표에 근접하고 있다거나, 논란의 여지는 있다지만 대그룹의 업종간 빅딜이 거의 마무리 되고 있는 점, 부실 금융기관들이 대거 정리되고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은 기관들은 일단 자기자본율에서라도 국제기준을 충족하게 됐다는 사실 등을 굳이 낮추어 보거나 폄하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종합적인 국내 경기도 일견 IMF 암흑기에서 거의 벗어난 국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성장률은 오히려 과열을 우려할 정도며 물가 국제수지등 주요 거시지표들이 좋다.
그러나 이같은 호실적의 내용과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내년 경제를 결코 안심하지 못하는 우리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막대한 공적자금과 정권초기의 강한 공권력으로 밀어붙인 강제적인 개혁과 구조조정으로 간신히 떠받친 경제는 모든 사리가 그렇듯이 자생력을 가질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기업과 은행들이 올해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추고 증시를 부양하면서 부의 편재를 허용하는 가운데 거대한 민간의 부실을 대신 떠안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상시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정부로서 거시경제 운용에 발휘할 운신의 폭이 취약해진 사실은 무엇보다도 염려해야 할 대목이다. 또한 수많은 금융기관들과 부실기업들이 사실상 국영기관으로 전락하고 나라전체가 거대한 국영공화국이 되다시피한 반시장적 해독이 경제전반에 스며드는 사태를 경계해야 한다. 미시적으로도 재벌그룹의 지배구조와 각종 불공정거래 행태등 개선과 개혁이 미흡한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리경제는 다시 주저앉을 수도 있는 위험인자들을 저변에 깔고 있다. 내년은 다른 나라들이 예외없이 겪었던 「IMF 3년차 증후군」과 겹치는 해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고비를 넘고 안정성장의 원동력을 견실하게 다지려면 시장의 경쟁원리에 의한 각 경제주체들의 자율적 개혁이 절대과제인 만큼 이제는 정부가 시장환경조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정교하게 개선해 나가는 가운데 시장개입에서 효과적으로 발을 빼는 방법을 강구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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