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죽음, 지식인을 위한 변호유럽 은행의 초대 총재를 지낸 저술가 자크 아탈리는 지난해에 낸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지식인(intellectuel)」을 이렇게 정의했다. 『세상의 광기를 자유롭게 관찰하는 사람, 확신시키기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지배하기보다는 매혹하려고 애쓰는 사람, 순응주의에서 벗어난 사람,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있는 사람, 눈먼 확신의 속죄양』
아탈리 특유의 발랄한 레토릭이 지식인을 다소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듯도 하지만, 여기까지는 20세기의 지식인상(像)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탈리는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그(지식인)는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옛 형태로 다시 나타나, 기구, 국가, 기업, 파벌 등을 위해 미사여구를 늘어놓을 것이다』
21세기의 지식인은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아탈리가 사용하는 이말은 말할 나위 없이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에게서 빌어온 개념이다. 그람시에 따르면, 유기적 지식인은 어떤 계급, 특히 지배 계급에 의해 창출돼 지배계급과 긴밀히,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는 지식층이다. 유기적 지식인은 지배 계급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이용해서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를 강화한다. 물론 프롤레타리아도 자기 계급을 조직하는 유기적 지식인을 거느릴 수 있지만, 「기구, 국가, 기업, 파벌」에 봉사한다는 아탈리의 말로 보아, 그 유기적 지식인이 노동자 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아탈리가 내다보는 21세기의 지식인은 19세기말부터 주로 프랑스에서 특별한 의미를 담게 된 지식인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지식 계급이다. 아탈리는 21세기의 지식인은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말을 살짝 흘림으로써, 실은 「지식인의 죽음」을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지식인의 족보를 살피자면 조선조의 유자(儒者)나 선비에서 그 가까운 기원을 찾을 수 있겠지만, 현대적 의미의 지식인은 프랑스어 「앵텔렉튀엘(intellectuel)」의 번역어로서 성립됐다. 프랑스어에서도 앵텔렉튀엘이라는 말의 역사가 오래된 것은 아니다. 자크 쥘리아르와 미셸 위노크가 책임 편집한 「프랑스 지식인 사전: 인물, 장소, 사건」(1996)에 따르면, 프랑스어에서 앵텔렉튀엘이 명사로 처음 사용된 것은 생 시몽의 「산업 체계에 대하여」(1821)에서였고, 그 말이 대중화한 것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다. 19세기 말이란 구체적으로 1894년부터 1906년까지 프랑스의 여론을 또렷하게 갈라놓았던 드레퓌스 사건을 가리킨다. 프랑스 군부의 음모에 휘말려 독일군의 스파이로 몰린 유대인 알프레 드레퓌스 대위의 무죄를 주장한 작가, 예술가, 기자, 학자들을 반(反)드레퓌스파들이 「앵텔렉튀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런 만큼 이 말에는 「현실에서 유리된 이상주의자」 「무책임한 선동가」라는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함의가 담겨 있었다.
드레퓌스 옹호자들의 후예이자 지칠 줄 모르는 참여를 통해 지식인이라는 말의 상징이 된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1972)에서 드레퓌스 사건을 다시 거론하며, 반드레퓌스파가 지식인이라는 말에 담은 부정적 의미를 오히려 영예롭게 받아들인다. 1965년의 일본 방문 때 행한 세 차례의 강연을 모은 이 책에서 사르트르는 지식인에 대한 모든 비난은 「지식인이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한 뒤, 바로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정확한 정의라고 되받았다. 지식인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다. 그 말을 바꾸면 지식인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드레퓌스의 일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던 에밀 졸라나 아나톨 프랑스 같은 작가처럼 말이다.
사르트르는 더 나아가 지식인은 자신의 지적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사르트르에게 이 말은 당연히 긍정적 의미로 사용된다)하여 기존의 사회와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바로 이 남용이야말로 지식인의 본질적 부분이고, 어떤 체제, 어떤 시대에도 지식인이 처할 수밖에 없는 불편함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자라는 의미에서 지식인은 대체로 좌파 지식인을 뜻했다. 특히 사르트르 시절의 프랑스에서 그랬다. 사르트르의 참여 개념을 중심으로 좌파 지식인들은 프랑스 지식계를 장악했고, 그래서 마르크시즘을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규정한 레몽 아롱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도덕적으로 비난한 카뮈 같은 사람들은 지식계의 변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에서 지식인과 마르크스주의의 단절이 나타난 것은 앙드레 글뤽스만이나 베르나르 앙리 레비 같은 신철학자들이 마르크스의 죽음을 선언한 70년대 중반 이후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사르트롱(사르트르 + 아롱)적 지식인이었다. 1979년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원조하기 위해 사르트르와 아롱이 화해하고 힘을 합쳤듯, 체제 문제에 대한 첨예한 논의를 미뤄두고 인권이나 민주주의적 절차를 강조하는 느슨한 지식인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탈리는 21세기의 지식인이 유기적 지식인, 곧 기능적 지식인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 잦아든 좌파의 목소리나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유기적 지식인의 화려한 무대 활동은 아탈리의 예측을 그럴싸하게 만든다.
좌파 이념의 쇠잔과는 상관 없이 21세기에 지식은 좀더 널리 공유될 것이고, 전통적 의미의 지식인은, 그가 비록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할지라도, 의미있는 계층을 형성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까 지식인과 대중의 경계는 점점 더 흐릿하게 될 것이다. 지식인의 죽음은 임박한 듯하다. 그러나 지식인의 죽음은 한편으로 대중의 지식인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대중에 기원을 둔 그 새로운 지식인이 기구, 국가, 기업, 파벌 등을 위해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유기적 지식인」이 아니라 사르트르적 의미의 지식인, 또는 아탈리가 말하는 「순응주의에서 벗어난 사람」에 가까웠으면 하는 것이다. 희망이 예측을 대치할 수는 없지만, 희망은 삶의 원기소(元氣素)이기도 하다. 그러니, 『지식인은 죽지 않았다. 다만 몸피가 커지고 있을 뿐이다』
■[살아있는 지식인의 전형] 촘스키와 부르디외
사르트르의 정의대로 지식인이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 「자신이 특정한 지적 분야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해 기존 사회와 정치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71)와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69)는 살아있는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 40여년 동안 MIT 대학에서 언어학을 가르쳐 온 촘스키는 지난 세기의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함께 현대 언어학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기존의 구조주의 언어학, 기술 언어학을 비판하며 그가 확립한 생성문법은 언어학만이 아니라, 심리학, 철학, 인지 과학 등 인접 과학 분야에도 짙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흔히 「촘스키 혁명」이라고 불리는 그의 이론은 언어 생득설, 곧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언어 능력을 지닌다는 가설과 보편 언어설, 곧 모든 자연언어는 겉보기와는 달리 가장 깊숙한 층위에서는 동일한 문법을 지니고 있다는 가설을 축으로 삼고 있다. 만만찮은 반론에도 불구하고, 촘스키의 생성문법은 미국, 일본, 한국, 대만은 물론이고 유럽의 언어학계에까지 새 바람을 일으켰다.
촘스키는 언어학 분야에서 확고히 쌓은 자신의 명성을 기존의 사회와 정치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남용」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반대 투쟁에서부터 시작해 끊임없이 미국 정부의 제국주의 정책과 미국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제동을 걸어왔다.
무정부주의적 자유주의에 가까운 그의 급진적 정치 노선은 미국의 지배 계급으로부터만이 아니라 좌파 진영에서도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굽힘없이 미국 내부에서 미국을 반대하는 가장 새된 목소리를 내 왔다. 최근에 번역된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모색)나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한울)은 촘스키의 이런 급진적 입장을 잘 보여준다.
촘스키가 언어학의 제왕이라면 부르디외는 사회학의 황제다. 그는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의 논문들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들의 저자다. 아비튀스(사회적 행위 주체의 행동 원칙들을 결정하는 일련의 획득된 기질이나 성향), 장(場: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어떤 사회적 관계의 덩어리), 상징적 재산, 문화적 자본 등 그가 만들어낸 개념들은 사회과학에서만이 아니라 인문학에서도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촘스키처럼 부르디외 역시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지식인이다. 그는 사회학의 황제이자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라는 명성을 「남용」하여 줄곧 프랑스 안팎의 소수파들을 옹호해 왔다. 그가 옹호하는 소수파는 사회 구조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반드시 노동자 계급이나 실업자 같은 경제적 소수파만이 아니라, 여성, 동성 연애자, 장애인 같은 문화적 소수파를 아우른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지만,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전세계를 휩쓸고 사회민주주의가 「제3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자유주의에 투항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말대로 「좌파의 좌파」를 이루고 있다. 그는 대산문화재단의 초청으로 내년 9월에 한국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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