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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책정당을 건설하려면 - 김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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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책정당을 건설하려면 - 김병국

입력
1999.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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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정당화」. 국민이 한국정치를 비판하고 개혁하려 할 때마다 화두로 삼는 말이다. 선거철마다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금품살포 및 인신공격에 나서면서 「표」를 구하는 붕당정치로는 험난한 새 천년을 헤쳐나갈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당이 그러한 질책에 달라질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워크아웃의 폭풍 한가운데 서 있지만 정책을 결정하고 실천에 옮기는 전 과정에서 정당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여(與)든 야(野)든 정책결정에 대한 책임은 정부 부처에 전가하고 그 실책을 비판할 권리만 챙기는 모순적 행동을 일삼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정당을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정책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 문 제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책임회피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본래 정당은 「정책을 논하자」는 총론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각론의 단계에서는 서로 눈치를 살피고 말을 아낀다. 사회 각계각층이 고통분담의 몫을 놓고 이해갈등을 빚기 때문이다.

국회가 공론과 정론의 산실이 되어야 한다는 명분론을 좇아 정책적 대안을 내놓다가는 사회적 이해갈등에 치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다 선거에서 「표」만 잃고 말 위험성이 높은 것이다. 최상의 전략은 오히려 상대방이 대안제시라는 무리수를 두다 특정 계층의 반발을 사 낙마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당은 내버려두면 안되는 존재인 것이다. 오직 사회 각계각층이 「후원」을 약속하거나 「낙선운동」을 벌일 때 정당은 누구를 지지기반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면서 정책논의에 나선다.

그런데 한국인은 정책정당화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그 길을 터줄 행동에는 나서기를 꺼린다. 오히려 사회 각계각층이 이익단체로서 선거전에 끼어들면 갈등만 증폭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선거운동을 제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로비」가 있는 곳에 「부패」가 싹튼다는 불안감에서 이익단체의 행동반경을 억제하려고만 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노동단체가 선거운동을 통해 정책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원천봉쇄당하면 오히려 쟁의가 터질 위험성이 높아진다. 노동운동권의 소외의식이 정치적 배제에 비례하여 커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책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노조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리하면 언제든지 가두투쟁을 선언할 수 있다.

한편 부패의 위험성을 우려해서 로비 자체를 불허하면 재벌은 밀실에서 은밀히 정치인에게 떡값을 건네주고 그 대가로 특혜에 대한 무언의 약속을 손에 거머쥔다. 부패의 싹을 아예 제거하려던 것이 오히려 부패를 더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금에 반대편에 선 정치인을 골라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는 양대 노총과 시민단체의 선언에 한번 희망을 품게 되고 자본을 지켜주는 정치인을 공개적 후원명단에 포함시키겠다는 전경련의 발언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이제 정책정당을 건설하는 역사적 과제는 이익단체의 몫이다. 그러나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누가 누구한테 정치자금을 얼마나 내는가가 한눈에 보이는 투명한 선거판을 서둘러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고, 재벌이 돈으로 영향력을 확보하려 들면 노동이 머릿수로 그에 맞서는 균형적인 선거판을 짜는 것이 우선이다.

이에 실패하면 이익단체는 「로비는 곧 부패」이고 「노사는 갈등만을 증폭시킨다」는 한국인의 편견만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책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다시 한낱 꿈이 되고 만다.

/김병국·고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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