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黃永祚·29)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조근형(趙根衡·19) 99년 경부역전마라톤대회 최우수신인상 수상자
메달이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다. 상금이 남달리 많은 종목도 아니다. 광고 스폰서를 잡을 수 있는 종목 역시 아니다. 프로는 없고 아마추어만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간단하고 쉬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42.195㎞를 쉼없이 달리는 마라톤. 그래서 사람들은 마라톤을 스포츠 중의 스포츠로 꼽고 인간이 인간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마라토너에게 주고 싶어한다. 올림픽을 마라톤이 마무리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우승으로 베를린올림픽(36년)이후 56년만에 한국에 마라톤 르네상스를 되찾아준 황영조선수. 그가 새천년을 이어 달려줄 후배를 만났다.
_ 겨울이 마라토너에게는 어떤 계절입니까.
황영조 = 겨울은 봄철 마라톤대회를 앞두고 체력을 강화하는 시기입니다. 저는 이 겨울이 특별합니다. 18일 바르셀로나 올림픽스타디엄 입구에 저의 동상을 착공하거든요. 춘천과 삼척에도 제 동상이 있습니다만 원래 스페인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5년 뒤의 평가를 갖고 동상을 건립한답니다. 우리 국민들이 저의 마라톤을 늘 기억해주신 덕분이지요.
조근형 = 경부역전 마라톤 대회(11월 8~14일) 신인상 수상으로 마라톤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뽑혀 동계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황영조 = 경부역전대회는 마라톤 육성을 위해 아주 중요한 대회입니다. 1주일 정도 고된 경주를 하면서 후배들이 선배를 눌러 자신감을 얻고, 선·후배간에 우정도 싹트니까요. 이 대회에서 개인상을 휩쓴 선수들은 모두 나중에 한국을 대표하는 마라토너로 성장했습니다. 저도 경부역전에서 90년 93년에 MVP를 차지하는 등 16전 16승을 올렸어요.
_ 경부역전 마라톤에서 황영조씨는 해설위원으로, 조근형 선수는 마라토너로 인연을 맺었지요.
황영조 = 해설을 하면서 선수들을 유심히 보니까 조 선수가 아주 가능성이 있어보였어요. 몸이 말라 약해보이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은메달을 딴 일본 모리시타 선수가 바로 이런 체형이거든요.
조근형 = 다섯번을 뛰었는데 2개 구간에서 1등을 했습니다. 황영조선배님이 역전마라톤에 오셔서 후배들을 응원해주셔서 참 좋았어요.
_ 마라톤 선수들은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합니까.
황영조 =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어요. 마라톤 며칠 전부터 말도 안할 정도로 집중을 해야 잘 달릴 수 있어요. 30㎞쯤 달리다보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요. 달리는 자동차에 달려들고 싶다고까지 말했을 정도로 그렇게 힘듭니다. 풀코스를 뛰고 나면 근육과 뼈 마디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발톱도 여러 차례 빠졌습니다.
조근형 = 저는 20㎞ 정도만 뛰어보아서 진짜 힘든 게 뭔지 아직 선배님처럼은 모르거든요. 무릎과 골반이 아파 참기 힘든 경험은 했지만. 그래도 달릴 때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저 테이프를 끊어야지, 그런 생각만 합니다.
_ 왜 하필이면 그 힘든 마라톤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까.
황영조 = 원래는 사이클선수였어요. 그런데 육상대회가 많으니까 시골학교에서 선수가 모자라면 다른 선수를 끼워서 육상대회에 내보내거든요. 중2때 처음 삼척군 주최 5㎞ 단축마라톤에 나갔는데 거기서 우승을 했어요. 이때 LA올림픽때 카를로스 로페스 선수가 마라톤 우승을 하는 것을 보고 마라톤도 멋있겠다 생각했거든요. 하다보니 사이클은 부상 위험도 많고 장비도 많이 필요한데 달리기는 안그렇거든요.
조근형 = 저는 황영조선배님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하는것을 보고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때였는데 TV에서 중계를 했어요. 시작하는 것을 보고 놀러나갔는데 놀다 들어와보니 계속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끝까지 봤는데 한국사람이 우승을 하는 장면에서 나도 마라토너가 돼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중1때 KBS 종별선수권대회 3,000㎙에서 1등으로 테이프를 끊었는데 바로 이 느낌 때문에 운동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황영조 = 그 느낌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지. 특히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를 들을 때의 느낌은, 조국애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지.
조근형 = 그 때 일본선수랑 계속 1, 2위를 다퉜잖아요. 그래서 더 꼭 이겨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황영조 = 상대가 누구라도 마라톤을 하면 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지. 30㎞를 넘어서면 너무 힘들어서 서로 약간씩 기대는 심정으로 마라톤을 하게 되거든. 그래도 상대방이 치고 나가면 질 수 없어서 또 앞으로 나가는 거야. 모리시타하고는 몇 번씩이나 엎치락 뒤치락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차라리 네가 확 치고 나가라 싶은 생각까지 드는거야. 그래도 막상 모리시타가 앞서 나가면 나도 질 수 없어 또 치고 나가는 거지. 사실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모리시타가 준우승을 한 것은 나보다 빨리 포기를 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마라톤을 정신력의 운동이라고 하는 걸거야.
_ 정신력이란 것은 체력과는 별개의 것입니까.
황영조 = 글쎄요. 정신력이 지구력에서 나오는 것인데 지구력이란 기본적으로 체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마라톤을 할 때 매일 40~50㎞를 달렸는데 이만큼 너끈히 뛸 수 있는 힘을 길러둬야 경기에 들어갔을 때 지치지를 않습니다. 요즘은 지구력 못지 않게 파워가 중요해졌습니다. 마라톤 세계기록이 (2시간) 5분대로 들어섰다는 것은 막판 스피드경쟁이 심해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감입니다. 저는 마라톤을 시작할 때부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겠다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그 때 한국 마라톤계의 숙원이 10분벽을 깨는 것이었는데 제가 10분벽을 깨겠다고 하자 국가대표 선배들조차 웃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결국 제가 10분벽을 돌파했거든요.
조근형 = 선배님이 마라톤을 그만 두어서 너무 아쉬워요. 다시 뛰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황영조 = 은퇴한 데 대해 후회는 없지만 솔직히 미련은 있는 게 사실이야. 그러나 지금도 달리고 있어. 올초 마라톤 완주도 하고 매일 아침 올림픽 공원에서 5㎞정도는 달려. 국민들이 운동을 그만둬 살이 찐 내 모습을 보면 실망할 것 같아서.(그는 현재 65㎏로 선수시절보다 4㎏가량 체중이 늘었다) 마라톤때문에 내가 세상에 알려졌고 결코 마라톤을 떠나서 살 수 없어. 마라톤 육성을 위해 내년 봄쯤 마라톤클럽과 마라톤교실을 열려고 해. 외국에는 우수선수도 클럽에서 배출되고, 클럽 운영비는 회비와 기업체 협찬을 통해 충당돼. 최근 코오롱 마라톤 팀 해체에서 알 수 있듯이 실업팀은 항상 투자한 만큼 결과를 요구하지. 그러나 마라톤에서 1등은 단 한사람이야. 그러니 기업체의 후원에만 의존하다가 한국마라톤이 발전할 수 없어. 신당참여도 마라톤에 도움이 될까 해서야.
조근형 = 최근 실업팀이 많이 해체돼 마라톤 꿈나무들이 많이 위축돼 있어요. 마라톤클럽도 잘 되고 실업팀도 더 많이 생겨 마라톤에만 열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황영조 = 결국 마라톤은 자기자신과의 싸움이야. 스스로 열심히 해야지.
조근형 = 열심히 해서 2004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겠습니다.
● 황영조
70년 강원 삼척생. 명륜고와 고려대 체육교육학과와 대학원을 마쳤다. 91년 7월 영국 셰필드 유니버시아드대회 마라톤에서 우승했고 92년 2월 일본 벳푸마라톤에서 한국 마라톤의 숙원인 10분대를 처음 깼다. 6개월 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우승, 56년간 참았던 마라톤 금메달의 갈증을 풀어줬다. 94년 10월 원폭 투하지인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우승,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웠다. 96년 은퇴했다.
● 조근형
80년 서울생. 서울 체육중·고를 거쳐 올해 건국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98년 전국체전 고등부 1,500㎙와 3,000㎙에서 1위를 했고 경부역전 우수신인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도 전국육상선수권 남자 5,000㎙ 1위, 전국체전 대학부 남자 5,000㎙에서 2위를 차지했고, 경부역전에서 최우수신인상을 받았다. 172㎝ 55㎏의 좋은 체격 조건에다 마라토너로서 손색없는 주법과 스피드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행 서화숙여론독자부장 hssuh@hk.co.kr
글 임종명기자 ljm@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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