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7일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의 대선자금 발언에 어이없고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의 직접적인 발언이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청와대에 깔려 있는 어둡고 화난 기류에서 김대통령의 노기와 실망이 쉽게 감지되고 있다. 이날 출입기자단과의 오찬에서도 김대통령의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다.김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정원장의 정례 주례보고 때 천원장에게 심한 질책을 했다.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이 『대통령이 꾸중을 했다』고 짤막하게 설명을 했지만, 천원장이 주례보고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을 것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천원장은 『죽을 죄를 지었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천원장의 신중치 못한 처신에 불편해 하면서도 일단 사태의 확산을 막는데 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앙일보 홍석현(洪錫炫)회장으로부터 전달받은 삼성그룹의 돈이 대가성없는 정치자금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남궁 진(南宮 鎭)정무수석과 박대변인 등은 『대통령이 97년 11월 14일 정치자금법 개정 전에는 어느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정치자금을 받았지만, 그 후에는 받지 않았다는 점을 천원장이 강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대통령이 지금 깨끗한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애쓴다』는 점을 천원장이 부각시켜려다 부적절한 예를 들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적극적인 해명을 하면서도 사태 추이에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는 특히 야당의 공세에 『당시 여당에 더 많은 자금이 들어간 것 아니냐』고 반박하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비공식적으로 『대선자금을 물고 늘어지면 국세청까지 동원해 자금을 만든 한나라당이 더 상처를 입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대선자금이 안고있는 폭발력을 감안, 정치권이 확전을 자제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청와대는 국정원장의 비보도를 전제한 브리핑이 지켜지지 않고 나아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에 곧바로 전달되는 상황에 개운치않은 표정이다. 기자의 윤리를 제기하는 관계자들도 적지않다.
한 관계자는 『카터 전대통령의 집권시절 싱글러브 전 주한미군 참모장이 오프로 밝힌 주한미군 철수방침을 한 미국 기자가 기사화했다가 신문사로부터 해고당했다』고 소개했다. 박대변인은 『이제는 고위공직자들이 입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요인에 핑계를 대지말고 여권 고위인사들이 위상에 맞는 적절한 처신과 신중함을 가져야 한다』는 자성론이 훨씬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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