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아직 세계 곳곳에는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않고 있지만 평화와 화해를 향한 도도한 흐름도 분명히 존재한다.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싹튼 이러한 흐름은 99년 종교계에서 가장 돋보였고 유혈로 점철돼온 대표적 분쟁지역인 중동과 북아일랜드에서 기념비적 성과를 거두었다.10월31일 가톨릭과 개신교의 일파인 루터교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교회에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구원론을 둘러싸고 500여년간 계속된 논쟁과 대립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대립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분리됐고 종교의 이름으로 가장 야만적인 전쟁까지 치렀었다. 양측의 화해는 교회일치 운동의 큰 진전임은 물론이고 종교간 화해의 물꼬를 트는 사건이기도 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에 앞서 3월에도 이슬람 지도자인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과 만나 「문명의 대화」를 나누었다. 교황은 『모든 종교간에는 공통적인 바탕이 있다』고 밝혔고 하타미 대통령도 『문명간의 충돌이 아닌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부처님 오신 날에 세계 불교도에게 축하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하고 힌두교 나라인 인도와 정교회 나라인 루마니아를 방문하는 「화해 투어」로 한해를 보냈다.
12월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세계 종교지도자회의가 열려 종교 지도자들이 세계평화를 위한 대화와 협력, 국제채무 탕감 등을 협의했다.
12월3일에는 신·구교도간 30년 유혈분쟁의 역사를 지닌 북아일랜드가 최초의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여전히 불안요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현재 북아일랜드해방군(IRA) 무장해제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중이어서 피의 역사가 마감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중동을 전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9월5일 와이리버 평화협정의 이행합의서에 조인, 내년초 최종지위협상을 남겨두고 있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군사력 보유와 국경, 예루살렘의 지위 등 난제가 많지만 평화를 향해 가는 큰 물결을 거스를 가능성은 없다. 15일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평화협상도 개시돼 가장 복잡한 분쟁지역인 중동에도 뉴 밀레니엄은 희망으로 열어갈 것이 기대된다.
수하르토 독재체제가 무너져 인도네시아에 첫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동티모르에 독립이 실현된 것도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긴 역사의 지평에서는 이런 화해와 평화 무드에 포함될만 하다.
14일에는 나치 독일의 강제노역 피해자 배상금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까지 나선 독일측은 20세기의 수치를 뉴 밀레니엄까지 떠안고 갈 수 없다는 결단에서 100억마르크(52억달러)의 배상에 합의했다.
태평양전쟁 희생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 및 배상노력이 아직 미흡하지만 제3국인 미국 법정에서 소송이 진행중이다.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올해 스페인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의해 영국에서 체포된데서도 드러나듯 역사의 법정에는 시효도 관할권도 없다.
냉전 해체로 이데올로기 대립이 끝난데다 종교·국가·민족간에도 평화와 화해가 뉴 밀레니엄의 가장 큰 원칙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전히 가장 뒤처진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에도 이제 세계의 흐름에 맞춰 남북 화해와 협력을 모색할 때가 왔다.
신윤석기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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