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한 해가 저물어도 마음이 들뜨게 마련인데 하물며 동시에 한 세기가 저물고 또 한 천년기가 저무는 3말(末)의 세모가 조용할리 없다. 거리마다 1000년대를 환송하고 2000년대를 맞이하는 행사들이 요란하다.
그러나 이런 밀레니엄 열기를 두고 한편에서는 밀레니엄 광기라고도 한다. 밀레니엄이 무엇이길래 이런 법석인가 하는 야유가 있다. 과연 밀레니엄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지 알기나 하고 호들갑을 떠느냐는 회의다.
세월을 재는 단위는 연월일(年月日)이다. 세가지 모두 태양계에 있어서의 지구와 달의 회전 주기에서 나온 것이다. 1000년은 1년의 1,000배일 뿐이지 1000년에 한바퀴씩 태양이 다른 항성 주위를 도는 것도 아니다. 1000년이라는 숫자로 시간을 토막지을 근거가 자연계에 없다. 1000년이라는 산술적 단위는 10진법의 유희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독교에서 예수가 재림하여 천년동안 왕국을 지배한다는 지복천년설에 현혹된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태양계에 1,000단위의 주기가 없고 1000년이 특정 종교의 자의적인 숫자라 해서 밀레니엄은 무의미한 것인가.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하면 만물은 수다. 수는 존재하는 최초의 것이요 사물의 제1원리다. 만물의 기초요 바탕이다. 가령 음악의 음계도 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모든 사물의 존재양식은 수로 나타낼 수 있다. 천체의 규칙적인 운행에서 보듯이 세계의 생성도 수의 생성과 나란히 진행되었다. 갈릴레이도 「우주는 수학적 언어로 쓴 거대한 책」이라고 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역사의 인자도 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역사의 숫적 단위가 연이요, 세기요, 밀레니엄이다.
수는 기호(記號)요 신호(信號)다. 수에는 무한한 상징성이 있고 무궁한 암시가 있다. 특히 1,000이라는 숫자가 가진 마성(魔性)은 모든 기대와 희망을 포용한다.
수학에는 무한원점(無限遠點)이라는 것이 있다. 무한히 연장되는 직선상의 저편에 무한원점이라는 한 점이 있어서 무한히 뻗는 것은 이 점을 통과하는 것으로 가정한다. 밀레니엄은 역사의 무한원점으로 가는 중간원점이다.
시간은 매듭없이 흐른다. 시간을 자의로 어쩌지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에 떠흐르는 인간으로서는 시간에 마디마디 매듭을 짓고 싶은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역사에도 리듬이 있다고 한다. 밀레니엄의 인식은 천년역사의 리듬을 의식하는 일이다. 역사를 바로 앞만 보지 않고 천년 단위의 거시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세계사에는 천년제국도 없고 천년왕조도 드물다. 이것이 천년의 길이다.
최근 미국의 천문우주잡지는 20세기 최고의 천체사진으로 아폴로 8호가 달 상공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선정했다. 달에서 보면 지구도 달이다. 이 지구를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천년의 적멸(寂滅)이 느껴진다. 저 유성위에서 서력기원이래 2000년의 세월이 흘렀던가. 우주의 영원성 속에서 지구상의 역사란 무엇인가. 천년이 하루같아 보인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지구는 하나다. 조그만 한 뭉치의 덩어리다. 이 작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 다같이 새 밀레니엄을 기념하는 것은 세계의 통시성(通時性)을 강조하는 것이다. 역사의 공유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인의 공동체적 운명감과 공속의식이 밀레니엄 축제속에 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자기가 사는 곳만이 세계라는 자기중심적 시야의 편향을 퍼로키얼리즘(지방인근성)이라 부르고 「전체로서 역사하는 마음」을 역설했다. 온 세계의 밀레니엄 소동은 이런 전체로서 역사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새 밀레니엄이 세계의 단일화의식을 고취시킨다면 하물며 국내적으로 국민의식의 합일화를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면면히 이어오는 4000년 역사 가운데 유사시대라 할 수 있는 3국시대이래는 꼭 2000년 정도다. 새 밀레니엄 기념은 지나간 국사에 대한 경배이자 다가올 국사에 대한 서원(誓願)이다.
밀레니엄의 행사는 한갖 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의(祭儀)다. 밀레니엄은 그 자체가 하나의 종교다. 종교가 가지는 모든 순기능이 그 속에 있다. 2000년은 경건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 밀레니엄의 새아침은 커다란 설날이요, 커다란 시작의 날이다.
이런 밀레니엄이기 위해 2000년은 2주 후로 다가오고 있다.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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