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정치개혁 입법이 밀실에서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관련 이해당사자의 의견 수렴, 법안 개정시 미칠 사회·경제적 파장 예측, 다른 관계법령 및 외국 입법례 참조 등 반드시 거쳐야할 절차들이 생략돼 곳곳에서 「부실공사」의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 협상대표는 물론이고 파문이 일면 뒤늦게 재검토의 뒷북을 치고 나오는 여야 수뇌부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다.물론 국회 정치특위가 뒤늦게 가동된데다 활동 기간도 짧아 여야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할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조항들은 협상과정에서 돌출한 게 아니고 대부분 공동여당 또는 야당이 충분히 시간을 갖고 준비했던 안에 포함된 것들이다. 따라서 정치권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평가다.
불공정 선거보도 언론인에 대한 제재 조항의 합의 과정은 정치개혁 입법 난맥상의 총체적인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시한부라고 해도 제재 대상 언론인의 「직업생명」을 끊어놓는 초강경 징계 방안을 확정하면서 언론계 학계 법조계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점은 입법 절차의 중대한 하자로 지적된다. 여야 각 정당과 국회 정치특위는 나름대로 여러 차례 공청회를 열어 여론 수렴의 모양새를 갖추긴 했다. 그러나 공청회의 초점은 대부분 선거구제 등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에만 맞춰졌고 문제의 언론인 제재 조항은 「사각지대」로 남고 말았다. 특위 협상대표들이 헌법학자 언론학자의 의견만 미리 들었어도 이같은 위헌적 독소조항의 합의는 예방할 수도 있었다.
여야는 또 「1년범위내 언론인 활동 금지」 조항이 현행 방송법 규정을 원용(援用)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여기에도 허점이 있었다. 현행 방송법상의 「1년 이내 방송 출연·연출 금지」 조항이 정작 곧 국회를 통과할 예정인 통합방송법에선 삭제됐기 때문. 『관련 법령에 대한 연구도 소홀히 한 채 선관위의 제안을 아무 생각없이 수용한 안이한 입법태도』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선거공영제 강화」라는 명분이 수백억원의 국민 혈세 부담으로 이어져 국민의 비난을 자초하리라는 사실을 간과한 점도 「앞만 보고 달리는」 정치권의 속성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전화비 선거사무실 비용 보전 등 여론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항목에서 좀더 세심한 비용 검증 등이 이뤄졌다면 입법상의 무리수는 막을 수 있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여당측이 재검토 방침을 확정하긴 했지만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선거후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키로 한 특위의 합의도 전형적인 의원이기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당연히 쉽게 확정해야 할 사안들을 정략적으로 뒤로 미뤄놓는 여야의 태도도 비판 대상이다. 15대 선거법 개정 당시 여야가 담합했던 일부 「게리맨더링」 선거구의 원상회복, 선관위의 선거비용 실사권 부여와 불법선거운동 감시권한 확대, 공명선거감시단체에 대한 선거비용 보고서 공개 등이 대표적인 여야의 고의적인 합의 지연 또는 유보 사례들이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