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저무는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담론이 무성하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 것같다. 이에 따라 올 한 해를 돌아보고, 지난 2년 동안의 IMF체제를 돌아보고, 20세기를 돌아보고, 두 번째 천년을 돌아보는 등 각종 회고가 줄을 잇고 있다. 물론 새로운 천년에 대한 논의도 회고만큼이나 무성하다.필자도 가끔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가 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IMF체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하는 물음이다. 이런 물음에 대해 누구나 나름대로의 답변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뼈를 묻지 않는 사람들」의 등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물론 IMF체제 때문에 사람들이 갑자기 뼈가 없는 연체동물로 변했거나, 뼈를 묻지 않아도 될 정도로 영원한 삶을 획득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이제 어떤 경제인도 조직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예전에 근로자들은 한 번 직장을 구하면 거기서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물론 경영자도 근로자의 이런 생각을 당연시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그 회사에서 끝까지 근무할 것으로 기대했다. 즉 근로자건 경영자건 한 번 입사하면 그 곳에 「뼈를 묻고 그 집 귀신이 되는 것」이 전통이었고 또 미덕이었다. 소위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제로였다.
이제 이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현재 민간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도 현재의 회사에 뼈를 묻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을 회사로부터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회사와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는 한도내에서만 철저한 계약관계로 공존한다. 이해관계가 맞지 않을 경우 아무런 미련없이 갈라선다.
필자 역시 대학문을 나서는 졸업생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이제는 세상이 변했고, 너희들의 미래는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회사에 뼈를 묻을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을 차라리 고용시장에서 평가해주는 매력, 즉 인적 자본을 증가시키는 데 투자하라고. 좋은 직장이 나타나면 미련없이 이직하라고. 간단히 말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고방식을 가지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분명히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사회의 조류가 그러할진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세태에 적응하는 것이지 중뿔나게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처럼 옆에 서 있는 조언자로서는 졸업생에게 조언을 할 때 가장 안전한 방법을 이야기해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무엇인가 응어리가 남는다. 그것은 희생과 봉사의 미덕보다 소아적인 이해타산에만 얽매이는 사회구성원을 보며 탄식하는 어떤 시민단체 책임자의 말을 들을 때 특히 그러하다. 교회에서 우리는 개인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접할 때 그러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금모으기 운동에 줄을 서는 것을 볼 때도 그러하다(물론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들은 이 때 열심히 금을 사들여서 짭잘한 재미를 보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 물론 과거의 우리 사회가 미덕과 전통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말도 안되는 비효율을 초래했던 측면이 있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구석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잘못을 교정하면서도 역시 무엇인가 새로운 미덕과 전통은 필요하다. 지독한 개인주의 사회인 서구에서도 여전히 희생과 봉사는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때로는 무엇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지 혼란스럽다. 새천년을 맞는 요즈음 Y2K만 우리의 걱정거리는 아닌 것같다.
전성인·홍익대 교수·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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