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9월3일 KBS 심야토론에 출연했다. 주제는 「민주화과정에 있어서의 이념문제」.방송 시작전 PD는 언론의 자유와 면책권을 강조하면서 인신공격은 하지 말 되 상대방의 주장은 강도높게 비판하라고 주문했다.
기획자의 예상대로 토론은 불꽃을 튀겼다. 우익·반공 입장의 논객은 북한이 김일성 개인 숭배가 강요되는 집단 수용소이고 생지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장은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고, 북한이 그렇다는 증거도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나는 북한을 공개적으로 두둔하고 남한을 비판하는 「빨갱이」로 낙인 찍혔다.
그날따라 그 프로를 본 사람이 왜 그리 많았던지. 다음날 아침 교인들은 『목사님 때문에 지난 밤 한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라고 인사했다. 내가 위험한 발언을 해 아마 KBS 건물을 나오기도 전에 구속되거나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교인도 있었다.
실제로 나는 한동안 전화와 편지 협박에 시달려야했다. 집에 불을 지른다느니, 가족을 몰살시킨다느니, 예배를 방해하겠다느니 하는 협박을 받으니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91년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주위 사람들은 『토론회의 문제 발언때문에 괘씸죄에 걸렸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좋은 경험도 많았다. 한 신문은 「말에는 말로 하라」는 제하의 사설로 나를 옹호했다. 신문 잡지 등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소신에 변함없다』고 거듭 밝혔다.
어쨌든 그날 이후 나는 빨갱이 목사라는 「악명」을 얻게됐다. 하지만 바른 말하는 목사로도 알려지게 됐다. 감옥에 갔을때 사람들은 내 이름만 듣고도 『아, 그 목사님』 하고 알아 보았다. 교회에 와 등록을 하고 교인이 되기로 한 사람중에는 심야토론을 보고 내 말에 감명을 받았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도 사업에도 이바지하게 된 것이다.
심야토론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거짓과 신화를 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고 생각할 때 나는 보람을 느낀다.
홍근수·향린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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