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잠정합의한 불공정 선거방송·기사에 대한 제재 방안은 내용과 절차 면에서 총체적으로 불합리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먼저 언론매체의 선거보도를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야가 합의한 언론인에 대한 저술·집필 금지, 방송인에 대한 연출·출연 금지는 사실상 언론인으로서의 생명을 중단시키는 극한 처방에 해당한다. 현재 법원과 언론중재위, 방송위원회 등이 언론의 오보(誤報)에 대한 제재 기능을 맡고 있지만 이들도 이같은 중징계는 거의 내리지 않고 있다.물론 우리나라 일부 언론이 지난 대선 과정 등에서 심각한 불공정·편파 보도의 폐해를 드러내 이에 대한 적절한 제재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극약 처방으로 모든 언론을 위협, 아직 현실화하지도 않은 불공정보도의 위험성을 제거하고 공정보도를 담보하겠다는 발상은 입법만능·입법편의주의의 전형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신문 등 정기간행물과 방송에 대한 제재 기능을 가진 선거기사심의위·선거방송심의위의 불공정보도 판단이 자의적으로 이뤄질 여지가 많다는 점도 문제다. 여야가 선거법에 언론징계 수단을 신설하면서 사실상의 형벌에 해당하는 제재의 요건을 이들 심의위에 포괄적으로 위임한 것은 넓은 의미의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여야의 입법 절차도 허점 투성이다. 주요 당사자인 언론 언론학계 법조계 등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게 대표적인 예. 여야는 심지어 선거기사심의위가 설치될 언론중재위측의 의견도 적절하게 듣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활동에 중요한 장애가 될 수도 있는 법조항을 새로 만들면서 입법기관이 공정보도와 언론자유, 두 민주주의 요소에 대한 충분한 비교형량(比交衡量)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와함께 여야와 선관위 모두 외국의 입법사례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조치를 결정, 입법의 사전 검증절차가 매우 부실했음을 확인시켜 줬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학계, "지나친 규제" 비판일색
언론학계의 평가는 비판 일색이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김경근(金景根)교수는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아 추측, 오보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에서 기자들에게만 과중한 책임을 묻는 건 일종의 언론길들이기 시도로 볼 수 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이재경(李載景)교수는 『우리 언론의 선거보도가 부실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법적으로 언론활동을 규제하고 중징계하겠다는 정치권의 발상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여야가 정말 진지하게 불공정 보도를 규제하려 한다면 먼저 기존 사례와 외국 입법사례 등을 충분히 고찰하고 언론이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권했다.
■여야 입장해명 "공정성 목적"
국민회의측 선거법 협상대표였던 이상수(李相洙)의원은 14일 『여야를 떠나 언론의 선거보도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 개혁차원에서 이 조항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재수단이 있어야만 규제가 실효성있게 이뤄질 수 있다』면서 『그러나 지나치다면 다시 고려해 보겠다』고 재검토 용의를 밝혔다.
한나라당 신영국(申榮國)의원은 『여당이 좋은 취지에서 입법을 제안, 별 이견없이 수용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언론 제재를 여야에 제안한 선관위 실무관계자는 『선거때마다 지나치게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인신공격성 보도를 일삼았던 지방 일부 군소 신문·주간지 등의 규제가 주목적』이라며 『운용의 묘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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