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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금은 使가 양보할때 -송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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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금은 使가 양보할때 -송호근

입력
1999.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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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분쟁이 총력전으로 치닫고 있다. 경제위기를 넘느라고 숨이 턱까지 찬 이 시점에서, 노(勞)는 17일 부분 파업과 연말 총파업을 선언하였고 사(使)는 96년 개정노동법과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내세우며 꿈쩍도 않는다.노사 모두 「한번 해보자」는 태세다. 정부는 노사정위를 전방 배치하여 노사타협을 유도하려 했지만 1차 실패. 한국의 21세기가 결국 노사격돌이라는 낡은 방식으로 문을 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분쟁의 쟁점도 새천년의 대장정에 걸맞는 것이라면 부끄럽지나 않을 것을. 전임자임금 및 노동시간단축과 같은 정도의 「저급한」 문제들이 노사협의로 풀어지지 않는다면 세계일류국가 운운할 자격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일단 해결을 해놓고 볼 일이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이 문제는 96년 12월 말 정부가 감행했던 그 유명한 날치기 통과에서 비롯된다. 노조전임자 임금문제는 당시 노동법개정을 위한 6개월간의 합의과정을 결렬시켰던 최종 쟁점이었는데, 노동법개정을 서두르던 정부가 전격적으로 밀어붙였던 사안이다.

합의정신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파괴했던 정부의 비민주적 태도는 결국 97년 1월 전국 파업에 불을 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1조원에 달하는 생산차질을 빚었다. 노조가 사생결단을 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며 경영자가 유례없이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복수노조를 내주고 얻어낸 대가이자 이미 입법화한 사항이기에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할까, 정부가 해결해야 할 터인데, 노사정위가 어렵사리 내놓은 공익안을 노사 모두 거부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은 무엇보다 사(使)가 양보할 때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노사가 모두 어려웠던 지난 2년 동안 기업은 그나마 공적 자금의 혜택을 받아 구사회생하였지만 노동자는 임금삭감, 취업불안정, 실직 등의 삼중고를 치뤄야 했다. 98년 2월의 정리해고안에 서명하면서 노조는 경제위기 재발을 막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본질적인 개혁정치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희생된 것은 노동자뿐이었다는 노조의 공격을 비난할 수 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지금은 희생자를 달랠 때이지, 더 밀어붙일 때가 아니다.

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합리화라는 선물을 얻었던 반면, 노조는 조합원의 대량유출과 조직의 와해라는 이중 위기에 직면하였다. 현재 노조조직률은 12%로 해방 후 최저점으로 내려앉았으며, 그나마 교섭력도 양대 조직으로 분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상황에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규정이 현행대로 관철된다면 한국에는 바야흐로 노조없는 시대, 노조가 있어도 기능을 상실한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종업원 500명의 대공장을 예로 들면, 이들이 내는 조합비는 매월 800만원 정도. 전임자 두 명에 약간의 살림을 하면 그만인 액수이다. 그렇다고 임금을 자발적으로 지급하는 기업주를 노동법위반으로 모조리 처벌할 수 있을까. 우리처럼 금지규정을 명시하는 선진국이 거의 없다는 점을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은 노조를 고사시킬 작정일까. 그러면 득보다 실이 많아질까. 모두 어리석은 질문들이다.

전임자 임금지급은 노사자율로 정하는 것이 백번 옳다. 대신 노(勞)가 양보할 것이 있다. 우선 전임자수를 줄여야 한다. 우리 경우 전임자가 너무 많은 것은 노조가 기업별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인데, 산별조직으로 이행하면서 전임자 수를 대폭 줄이는 것이 마땅하다.

복수노조인 경우는 기업주가 이중고를 당하지 않게 전임자수에 관한 특별 규정을 두는 것도 고려함직하다. 끝으로 요구사항 중 주40시간 노동시간제는 원칙적으로 찬성이다. 그러나 노동시간 단축은 곧 고용창출이라는 노조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며,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임금삭감을 각오하는 조합원들이 얼마나 될런지도 의문이다. 노동시간에 관한 한 더 과학적인 발상과 정책구상이 필요하다. 이는 「양보」가 아니라, 노조의 성숙한 판단을 요하는 문제이다.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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