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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 그린 '아주 오랫동안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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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 그린 '아주 오랫동안 영원히'

입력
1999.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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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그린은 지금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아이다. 7세이던 94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섬. 그가 살던 미국 캘리포니아가 아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그는 가족과 여행하는 중에 무장 강도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명을 잃었다기보다 뇌사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죽어서 다시 태어났다. 니콜라스의 부모는 그의 장기를 아들이 불의에 숨진 이탈리아 땅에서, 죽어가는 이탈리아인들에게 기증하기로 결정했다. 무려 일곱 사람이 그의 장기를 받고 사경을 헤어나왔다. 「아주 오랫동안 영원히」(원제 「The Nicholas Effect」)는 니콜라스가 죽음을 맞고, 장기를 기증한 사연을 그의 아버지가 직접 쓴 책이다. 니콜라스가 죽고 2년여 동안 그린씨가 벌인 장기기증운동의 모습도 함께 담겨 있다.

이탈리아 강도들이 여행 중인 외국 어린이를 죽였다는 사실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이탈리아 전국에 충격을 던졌다. 뇌사한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결정이 알려지자 이탈리아 국민 모두가 술렁였다. 「니콜라스 효과」라는 말은 결코 미화가 아니다. 54년 처음 장기이식에 성공한 이후 장기이식의 역사에서 이만큼 큰 파장을 몰고 온 사건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국적과 직업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 소년의 장기 기증에 감동하며 장기 기증서에 서명했다.

손자를 봐야 할 나이인 예순에 가까워 낳은 첫 아들을 잃은 비통함과 장기 기증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리고, 또 적극적인 장기기증운동에 헌신하며 2년을 보낸 니콜라스의 아버지 그린씨는 하지만 세상의 그런 떠들썩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이 흐르면 이별의 고통도 무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잊어버릴 수 없는 것, 이 모든 사건의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니콜라스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기회를 영원히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읽지 못한 그 모든 책들, 그 모든 일몰 장면, 그 모든 우정들 말이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을 만날 때면 니콜라스는 이런 것 중 그 무엇도 알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기쁨에 뒤이어 슬픔의 구름이 몰려들곤 한다」.

아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5년. 칠십 노령이지만 여전히 장기기증운동을 정력적으로 펼치고 있는 그린씨는 장기를 기증받아 생명을 되찾은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보여주는데 아낌이 없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반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남자가 장기를 이식받은 뒤 집 주변을 걷기 시작하다 5㎞ 달리기에 참가하고 알프스 산에 오른 이야기, 너무 약해 부축을 받아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사람이 심장을 이식받고 2년 만에, 미국 48개 주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 산(4,418㎙)에 오르고, 몇 달 뒤엔 일본 후지 산을 정복한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중하고 놀라운 것은 『정신적인 소생』이라고 그린씨는 지적했다.

「모든 인간은 하나의 섬이라고 생각한다. 환희나 절망의 순간을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섬은 교감이 가능하며 따스하고 쾌적한 바다에 둘러싸여 있을 수도, 차갑고 적대적인 바다에 둘러싸여 있을 수도 있다」. 그린씨는 지난 5년 동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지나오며 섬이 따뜻한 정으로 넘치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린씨의 글에는 세상이라는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진솔한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사건 하나하나에서 무엇이든 의미를 끌어내야겠다는 의도가 지나쳐 때론 문장이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고 있어 아쉽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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