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12월14일 독일 물리학회. 막스 플랑크는 물질의 복사(輻射)를 설명하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속의 h, 즉 「플랑크 상수」라 불리는 이 알파벳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당시엔 플랑크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이 플랑크 상수가 100년이 지난 오늘날 미시세계의 물질 운동법칙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한 양자(量子)역학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올해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진보를 뽑는 많은 설문에서 일반 대중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탄생을 첫손으로 꼽은 반면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의 탄생」을 주저없이 꼽았다. 양자역학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 것일까.
■원자수준의 물질에 대한 이론
양자역학이란 원자 수준의 물질 운동법칙이라 할 수 있다. 뉴턴의 고전역학은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거시세계의 물질 운동을 설명한다. 그러나 1897년 전자가 발견되고 물리학자들이 원자 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고전역학은 한계를 드러냈다.
뉴턴역학은 물질의 초기 위치와 가해진 힘만 알면 언제 어디를 운동하고 있는지 예측할 수 있었지만 전자의 위치나 운동량은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을 뿐 둘을 동시에 정확히 재는 것이 불가능했다.
플랑크는 원자수준에서 물질은 진동수와 플랑크상수를 곱한 정수배만큼의 에너지를 갖는다는 공식을 제시함으로써 원자세계의 움직임을 예측가능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플랑크상수는 에너지의 불연속성을 나타내며 이런 의미에서 양자(Quantum)란 이름이 붙었다. 이 불연속성은 거시세계에서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작은 양이라 뉴턴역학이 유효하지만 미시세계에서는 중대한 변수인 것이다.
양자역학은 이후 눈부시게 발전했다. 1913년 보어는 전자가 특정한 조건의 궤도만 돌 수 있다는 원자모델을 내놓았다. 빛뿐 아니라 물질도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가진다는 것이 1923년 드 브로이에 의해 제기됐다.
1925년 하이젠베르크가 행렬함수, 1926년 슈뢰딩거가 파동함수를 내놓으면서 양자역학도 뉴턴의 운동법칙과 같은 방정식으로 정리됐다. 또 전자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운동하기 때문에 이를 상대론적으로 봐야 한다는 디렉 방정식(1928년)이 덧붙여졌다. 이 방정식들을 쓰면 물질이 어느정도의 에너지를 가지며 어떤 성질을 띠게 되는지 계산할 수 있다.
■왜 중요한가
1930년대 이론적으로 완성된 양자역학이 일반인의 삶에 실질적으로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컴퓨터다. 컴퓨터는 반도체기술이 발전하면서 급진전했는데 반도체칩의 구조에서 얼마만큼 전류가 흐르는가 하는 것은 슈뢰딩거방정식으로 계산할 수 있다.
만일 양자역학이 없이 일일이 시행착오를 통해 반도체 에너지준위를 계산해야 했다면 지금과 같은 컴퓨터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최근 전자가 자전하는 스핀현상을 이용한 메모리칩 연구는 또 한차례의 진전을 예견한다.
차세대 메모리칩으로 연구중인 M램은 전자의 스핀을 일정한 방향으로 정렬시켜 자기장을 형성함으로써 정보를 0과 1로 기억토록 하는 메모리인데 이것이 실용화하면 기존의 램보다 전력소모를 수십배 절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양자역학은 현대과학의 토대가 됐다. 두드리고 전기를 흘려보고 가열·가압해 보는 등의 경험적 방법을 쓰지 않고도 미시세계에서 물질의 특성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재료공학, 분자생물학, 전자공학등이 세워졌고 소립자와 우주선(宇宙線)의 규명에도 기초가 되고 있다.
■끝나지 않은 해석문제
아인슈타인은 당시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던 플랑크의 가정을 높이 평가하고 빛의 입자성을 주장하는 등 양자역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식을 배반하는 물질의 이중성(파동이며 동시에 입자)은 많은 혼돈을 불렀다.
인간의 인식론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었다. 서울대 장회익(물리학과)교수는 『양자역학적 존재를 이해하는 사고체계는 1세기쯤 지나야 세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자역학을 뛰어넘는 새 이론을 수립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할 대안은 없는 상태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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