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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 세계최강 "이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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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 세계최강 "이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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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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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와 스프린터가 단거리 경주에서 맞붙는다면? 승부는 불문가지. 「전공」이 아닌 선수가 질 수밖에 없다.바둑계에서도 이런 비유가 곧잘 동원된다. 국제무대에만 나오면 한국한테 맥을 못추는 일본을 두고 호사가들은 예의 「단거리 경주론(論)」을 자주 들먹인다.

제한시간 8시간짜리 「이틀 바둑」에 익숙한 일본기사(마라토너)가 속기전이 몸에 밴 한국기사(스프린터)한테 3시간짜리 국제기전(단거리경주)에서 고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

이는 「현대바둑 종주국」인 일본의 체통과 자존심을 지켜주는 유일한 논리이기도 하다.

일본은 과연 언제까지 이런 논리에 안주할 수 있을까. 89년 조훈현 9단이 제1회 잉씨(應氏)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 첫 국제대회 우승을 안겨줄 때만해도 이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일본 기계 내부에서조차 「일본바둑 쇠망론」이 고개를 들만큼 한국과 일본의 실력차는 너무 벌어졌다.

한국의 「스프린터」들은 이제 「마라톤경주」에 나가서도 결코 뒤지지않을 만큼 막강해졌다.

7일 막을 내린 제4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선수권대회는 한국의 기력이 일본보다 「한수 위」임을 재확인해주었다.

이창호9단이 일본대표 조선진 9단을 3대 0으로 가볍게 누르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한국은 제1회 중국 춘란배(조훈현 9단 우승), 제3회 LG배세계기왕전(이창호9단 〃), 제12회 후지쓰(富士通)배(유창혁9단 〃)에 이어 올들어 개최된 4대 국제기전을 싹쓸이, 세계바둑을 사실상 평정했다.

한 해에 열린 국제기전을 모두 석권한 것은 93, 94년에 이어 세번째. 한국바둑은 이제 세계바둑의 「이정표」나 다름없다.

400년 전통에 500여명의 프로기사를 거느린 일본이 50년 역사에 150명의 기사를 보유한 한국에 밀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바둑 왜 강한가.

■천재 이창호의 연관효과

바둑 전문가들은 「신산(神算)」이창호의 등장이야말로 세계바둑의 물줄기를 한국으로 돌려놓은 결정적 계기라고 입을 모은다.

이창호 이후 한국바둑은 고질적인 약점이던 종반 끝내기와 갖가지 이론적 허점들을 보강하면서 포석부터 중반전투, 마무리까지 명실상부한 「세계최강」의 실력을 갖추게 됐다.

이창호9단이 다양한 형태의 신수(新手)를 끊임없이 보급하고 있는데다 조훈현·유창혁9단 같은 강자들이 동시대에 활동하며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가기 때문에 전체적인 기량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9단 자신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젠 그의 바둑을 연구한 웬만한 신예기사들도 일본, 중국의 정상급 기사들과 어깨를 견줄만큼 실력이 상향평준화됐다는 게 바둑계의 중평이다.

■「순장바둑」에 뿌리 둔 전투력

이론적이며 모양에 밝은 일본바둑에 비해 우리나라 바둑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전투바둑」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바둑의 강점을 재래식 바둑인 조선시대 「순장(巡將)바둑」에서 찾는 전문가들도 있다.

가로·세로 17줄의 순장바둑은 미리 귀와 변, 중앙에 8점씩을 놓은 상태에서 포석없이 처음부터 전투에 들어가는 형태.

모양에 상관없이 초반부터 치고받으며 복잡한 전투로 일관하는 바둑이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일본바둑은 정석과 이론에서 절대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한국바둑은 모양과 틀에 구애받지 않고 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탐구하는 「착상의 자유로움」이 큰 장점』이라며 『조치훈이나 조선진, 유시훈 등 한국인들이 일본 기계를 휩쓸고 있는 이유도 순장바둑의 자유로우면서도 전투적인 근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기교육 시스템

조기교육에 의한 인재양성도 한국바둑이 급성장한 중요한 요인. 이창호같은 바둑천재의 출현도 조기에 인재를 발굴, 양성한 결과였다.

한국기원이 30여년째 운영중인 연구생(10∼18세)제도가 좋은 예. 이창호, 유창혁, 최명훈 등 많은 전문기사들이 연구생을 거쳐 입단했고 지금도 많은 꿈나무들이 그들의 뒤를 밟고 있다.

더욱이 일본과 중국바둑의 주류가 30, 40대인데 비해 한국은 몇해전부터 연구생 출신의 10, 20대로 중심세력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한국바둑의 미래가 희망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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