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넘본다. 넘본다는 것은 생업과 전공은 따로 가지고 있으면서 남 모르게 창작에 열을 쏟고, 비평에 성(誠)을 낸다는 이야기다. 법과 문학에 대한 글을 적지 않게 쓴 서울대 법대 안경환 교수 정도면 그런 넘보기가 수준급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지금은 세상을 떠난 동국대 이균성 교수라면 넘보기 차원이 아니라 「이가(二家)」를 이뤘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법하다. 근·현대사 연구에서 이교수는 남이 걸어보지 못한 길을 묵묵히 걷고 있었으니까.이런 넘보기를 아주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는 사람은 또 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조두영(趙斗英) 교수다. 83년 한국정신분석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그는 정신과 환자들을 만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소설과 시를 읽었다. 작품 속에 담겨있는 등장인물의 심층심리, 미묘한 작품의 정신 구조를 그는 세밀하게 보았고, 그것을 「심리주의 비평」 또는 「분석적 문예비평」으로 꾸준히 만들어냈다.
「프로이트와 한국문학」은 조교수가 그동안 해 온 이런 작업들을 한데 묶은 책이다. 정신분석 이론에 낯선 사람들을 위해 정신분석 용어 해설로 책을 시작한 조교수는 창작과정에 얽힌 심리적인 문제들, 동화에서 출발해 소설과 시를 거쳐 영화로 이어지는 여러 창작물에 날카로운 비평의 칼을 대고 있다.
그가 가장 주목하는 사람은 소설가며 시인인 이상이다. 이상의 처녀작 「12월 12일」을 분석하면서 그는 이 작가를 이해하는 데는 버려진 자식과 양자의 심층 심리가 필수라고 이야기한다. 이상의 시 「선에 대한 각서1」 「이상한 가역반응」 「운동」에서 역시 시인의 심층 심리에 깔린 양자로서의 고통과 분노, 생부모에 대한 양면감정을 해부하고 있다. 이상의 소설 「지주회사」 「날개」 「봉별기」는 작가의 오이디푸스 이전기 심층심리가 어떻게 소설의 주인공으로 바뀌어 등장하는지를 제시했다.
「손창섭 초기작품 연구」에서 조교수는 자서전적 작품인 「신의 희작」을 기초로 하여 그의 단편을 분석했다. 그는 손창섭의 소설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게서 받은 성적 희롱이 공통으로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심청전」 연구를 통해 심청이 지닌 해결하지 못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생모에 대한 경쟁 심리를 부각시켰고, 영화 「서편제」에서는 유봉과 송화 부녀의 심층심리를 분석했다.
『문리대에 도강(盜講)하던 의예과의 한 악동이 반세기 후에 이런 식으로 검은 발자국을 낸다』며 웃던 아내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조교수는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분석학을 문예분야에 접목시켜 보자는 데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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