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네트워크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쓰이는 속임수들이다. 최소한 게임에서 무참한 패배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 게이머들의 주장이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도덕불감증이 게임계를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프로게이머들을 만나 속임수 실태와 반성의 목소리를 들어봤다.■속임수 안쓰면 프로가 아니다?
승부조작을 뜻하는 어뷰즈(abuse)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비열한 속임수로 꼽힌다. 주로 인터넷에서 열리는 세계대회 예선전에서 많이 쓰이며,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한 사람이 10∼30개의 이용자번호(ID)를 만들어 그 중 한가지로 시합을 벌이고 나머지는 주변의 아는 사람들이 사용하며 ID 개설자에게 져주는 것. 또다른 방법은 서너개의 ID를 만들어놓고 시합을 벌이다가 가장 점수가 높은 ID로 결선에 진출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밀어달라」, 즉 「일부러 져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후자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ID로 대결을 벌이기 때문에 알려질 확률이 적다. 최근
승부조작으로 물의를 빚은 「쌈장」 이기석씨가 세계챔피언에 오른 8월 대회대 본선진출을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이씨는 『내 ID가 중도탈락했기 때문에 전매니저 임모씨의 ID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스타크래프트는 수수께끼같은 게임이다. 사용자의 영역만 화면에 나타나고 적진 등 나머지는 검게 보이기 때문. 그러나 맵핵(maphack) 소프트웨어(SW)를 사용하면 전쟁터가 모두 드러나 상대방 움직임을 훤히 알 수 있다. 이 SW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상당수 게임방 PC에 설치돼있다.
치트(cheat)는 자원을 늘리는 SW. 게임 진행에 필요한 자원, 즉 에너지원은 한정돼있는데, 이 SW를 이용하면 원하는 만큼 늘릴 수 있다. 국내외에서 제작한 치트 프로그램이 인터넷에 많이 퍼져있다. 래그핵(laghack)은 상대방의 움직이는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 래그핵에 걸리면 유니트(게임속 등장인물)들의 속도가 뚝 떨어져 마치 PC가 고장난 것처럼 작동한다. 역시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한글 제목과 설명이 붙은 국내산 SW들고 많다.
듀얼디스(dualdis)는 고의로 접속을 끊으면서 마치 상대방이 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 네트워크게임에서 시작한 지 2분이 지나 고의로 접속을 끊으면 1패로 기록된다. 이때 듀얼디스 수법을 쓰면 당하는 상대방이 거꾸로 접속을 끊은 것처럼 상황이 바뀌어 패배가 전가된다.
■스타크래프트뿐이 아니다
이밖에 「리니지」, 「울티마 온라인」처럼 주어진 공간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하는 롤 플레잉형 네트워크게임에서는 암거래가 성행한다. 게임 진행에 필요한 각종 도구들을 실제 돈을 주고 사고 파는 것. 심한 경우 몇백만원씩에 거래되기도 하고, 더러는 훔쳐가거나 물건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는 등 범죄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승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폭력을 부르기도 한다. 올해 초 「리니지」게임을 즐기던 게이머가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등장인물을 죽였다가 집단폭행을 당한 사례가 있다. 살해당한 등장인물의 주인이 수소문끝에 게임방까지 찾아와 분풀이삼아 폭력을 휘둘렀다.
게임팀이 속임수에 악용되기도 프로게이머들 사이에 무리짓기가 성행하면서 슬기방게임팀, IGA, 시마, 난, 유제이클럽, 랩터스 등 수십개의 게임팀이 생겼다. 대부분 PC방들이 후원하는데, 최근에는 벤처기업인 한글과컴퓨터(나그네), 골드뱅크(골드뱅크 파이터)까지 뛰어들었다. 스타크래프트가 본래 「팀워크」가 중요한 게임이기도 하지만, 팀원들끼리 도와가며 손쉽게 승부조작을 할 수 있다는 점도 팀 결성 붐의 한 원인이라고 게이머들은 귀뜸했다.
외국에도 「(9)길드」라는 유명게임팀이 있다. 이들은 스타크래프트 말고도 레인보우식스, 피파, 퀘이크 등 모든 게임을 고루 잘하는 게임도사들일뿐 아니라, 속임수를 절대 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수로 꼽히는 17살의 캐나다선수 「그르르르」(X'DS∼grrr)가 속해있어 유명하다.
■속임수 왜 난무하나
한마디로 게임을 즐기기보다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거액의 상금과 「세계 랭킹 ○위」라는 명예욕에 눈 멀어 속임수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것. 한 게이머는 『제 실력으로도 얼마든지 세계 랭킹
에 오를 수 있는 고수들까지 속임수를 쓰고 있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거액의 상금이 걸린 게임이 늘어나면서 속임수를 쓰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한 게임대회의 경우 아예 「속임수대회」로 불릴 정도.
이기석씨의 승부조작 논란에 대해서도 상당수 프로게이머들은 『다들 속임수를 쓰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문제삼을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자성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 모프로게임팀 소속 최모(21)씨는 『속임수가 횡행해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게이머들까지 욕을 먹는다』며 『상금과 명예보다 정당한 승부를 펼치려는 도덕심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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