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골퍼들이 18홀을 돌고 나서 9홀 혹은 18홀을 더 돌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이 경우 대개는 초반에 몸이 덜 풀려 스코어가 시원치 않았다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리듬을 찾고 몸도 풀려 볼이 제대로 맞기 시작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그만큼 집중도가 떨어진 골프를 했다는 증거다.정말로 모든 샷마다 혼신을 기울려 게임에 임한다면 18홀을 돌고 나서 그렇게 맨숭맨숭할 까닭이 없다. 게임에 몰입해 18홀동안 최선을 다하는 골퍼는 날씨와 관계없이 등에 진한 땀이 배고 라운딩을 끝내고 나면 절로 「이제야 끝났구나」하는 안도의 숨을 내뱉게 된다. 이것이 정상이다.
18홀을 돌고도 자주 성이 안 찬다면 그것은 힘이 남아서가 아니라 골프에 몰입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라운드했다는 증거다.
무엇엔가 집중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 일리노이대 아더 F. 크레이머교수(심리학)는 이것을 입증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항공관제사나 비행기조종사처럼 시선과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사람들도 업무와 무관한 예상치 못한 물체가 시야에 나타나면 순간적으로 시선이 물체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항공관제사와 조종사에게 컴퓨터 스크린의 도형과 문자 등을 유심히 관찰하도록 한 뒤 예정에 없는 도형 등을 순간적으로 제시한 결과 대상자의 반 이상이 임무와 관계없는 도형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시선을 그 물체에 빼앗겼으며 이들 대부분은 자신이 그 물체에 한눈을 팔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을 집중해 일하고 있는 동안에도 업무와 관계없는 것에 시선을 돌린다는 실험결과는 몰입이나 집중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매는 한 마리의 들쥐를 잡기 위해 3~5시간을 들판 위 상공을 비행하는 끈기를 갖고 있다. 변변찮은 먹이감이지만 매는 상공에서 한순간도 한눈을 팔지 않고 들판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가 먹이감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꽂히듯 수직강하, 순식간에 먹이를 발톱으로 움켜쥐고 날아오른다.
매의 집중력은 바로 골퍼에게 필요한 것이다. 두번 다시 같은 샷을 날릴 수 없다. 온갖 상황에서 맞게 되는 모든 샷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샷을 허투루 칠 수 있겠는가. 볼이 어떤 악조건에 놓여 있다 해도 최선을 다해 플레이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아무리 고달픈 삶이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듯.
방민준 편집국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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